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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웃자람

by 두마리 4 2023. 11. 11.

고구마 줄기가 웃자란 것은 고무마가 거의 없다. 고구마는 덩이뿌리인데 줄기와 잎이 무성한 것은 뿌리덩이가 거의 없다. 줄기와 잎이 너무 자라지 않아도 뿌리덩이가 없다. 모든 작물이 거의 다 너무 웃자라도 너무 안 자라도 좋지 않다. 줄기와 잎이 넘치도록 무성한 것을 한자말로는 과번무(過繁茂)라고 한다. 번무(繁茂)는 번성(繁盛)이나 무성(茂盛)과 같은 말이다. 과번무(過繁茂)는 넘치게 무성하다는 것이다. 웃자람의 원인으로 질소과다, 과습(過濕), 통기(通氣) 부족, 일조량 부족 등을 꼽는다.

 

무엇이든 적정한 수준을 넘으면 좋지 않다. 주역(周易)에서도 좋은 것만 성()하면 그 다음은 좋아지지 않을 일만 남았기 때문에 좋은 괘가 아니다. 중천건괘(重天乾卦䷀)는 양효(陽爻)만 여섯 개다. 굳세기만 하다. 어질기만 하다. 천체나 태양은 굳세기만 해야 한다. 중천건은 우주 천체로 보면 절대적이고 자강불식(自彊不息)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중천건은 인간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절반의 완전함이다. 인간은 굳세기만 할 수 없다. 인간은 어질기만 할 수 없다.

 

주역은 모두 64괘다. 한 괘는 여섯 효이고, 그 효는 양효(陽爻)와 음효(陰爻)로 이루어져 있다. 주역 괘의 효는 모두 384개이고 양효 192, 음효 192개로 정확히 반반씩이다. 64괘 중에 양효만으로 된 괘가 중천건(重天乾䷀)이고, 음효만으로 된 괘가 중지곤(重地坤䷁)이다. 중천건은 굳셈의 완전한 이상태이고, 중지곤은 부드러움의 완전한 이상태다.

 

오행(五行)에서도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중에 어느 하나가 극단으로 강하면 넘쳐서 좋지 않다고 본다. 오행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좋게 본다. 골고루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힘이 비슷해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어느 한 쪽으로 쉽게 쏠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고구마를 캐 보니 줄기가 무성한 포기에는 덩이뿌리가 하나도 없었다. 너무 허무하고 아쉬워서 허겁지겁 여기저기 후벼파볼 정도다. 있어도 새끼손가락 만했다. 줄기와 잎이 별로 무성하지 않았던 포기에서 너냇 개씩 덩이뿌리가 달려 있었다. 일곱 개 달린 게 최고였다. 고구마를 캐면서 인간의 웃자람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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