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인 호소다 마모루의 '괴물의 아이' 를 오랜만에 아들과 다시 보았다. 주인공 큐타는 집을 뛰쳐 나온 뒤 동물이 사는 세상으로 건너와 괴물의 제자가 되기 위해 엉망진창인 주변을 청소하고 일상을 정돈한다. 그리고 스승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수련을 오랫동안 하면서 몰라보게 쑥 성장해간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가는 자신에게 우쭐하거나 머물러 있지 않는다. 자신이 떠나온 세상으로 다시 건너가 배우지 못한 공부를 이어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 자신 안에 있던 구멍과 마주하고는 그 불편하고 무서운 감정에 다시 도망치고 반항한다.
마음속에 어둡고 그늘을 만드는 그 구멍을 나는 잘 안다.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도 구멍 하나를 크게 키우고 그 속에서 헤어나올 길을 찾지 못해 혼자만의 상상속에 머물러 있었던 적이 있었다. 구멍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마음속에 있는 외롭고 슬픈 감정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마음속의 구멍은 처음으로 마주한 발가벗은 '나'라는 자아와의 마주침이라고도 할 수 있고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은 느낌같은 것일 수도 있다. 자아는 내면에서 스스로 느낀 오롯한 감정과 느낌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왜곡되고 해석된 나의 모습이 무섭고 이상해서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그런 상태일 경우가 많다. 한때 나는 내가 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면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칭찬과 비난 모두 나를 꼼짝 못하게 옭죄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매우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어렴풋이나마 배우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모든 감각에 반응하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느라 '나'라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때 나는 쾌와 불쾌는 있지만 스스로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존재의 일자에서 벗어나 자아라는 분리된 인식이 생겨나면서 내 존재는 세상에서 분리된 붕 뜬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소외된 감정에 휩싸여 성장통이라 찐한 감정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 분리된 자아를 외부 사람들의 평가에 맡겨두고 그것에 휘둘리면 자신의 자아는 제대로 구축될 여지도 없이 왜곡되고 비틀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이 뭔지 미세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되고 그 감정을 평가하지 말고 알아차릴 수 있어야 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세밀하게 파고들어야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쫒거나 세상이 원하는 모습에 따라가면 나의 자아는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 '~인 척 하는' 껍데기로 오래 살아갈지도 모른다.
괴물의 아이 큐타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청소하고 하루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수련을 꾸준히 한다. 대단한 고행의 수련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밥하고 바닥을 쓸면서 스승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감아 자신의 발동작을 그 리듬에 맞추는 훈련을 했다. 소림사에서 수련받는 제자의 모습이 상상되긴 하지만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하루의 루틴을 지루한 행위로 내버려두지 않고 신성한 예식을 주도하는 주례자처럼 오랫동안 살아냈다. 물론 이런 수련을 오래한 큐타도 내면 깊이 숨어있는 구멍을 다시 마주했을 때 혼란스러워 하지만 자신만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타인이 그 구멍때문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고는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맞서 싸워낸다. 큐타가 이렇게 싸울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자신을 지지해주고 지켜봐준 스승들도 있었지만 하루의 일상을 잘 살아낸 자에게 쌓인 내공때문이 아닐까?
문을 열어 문지방을 건너는 행위에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건너는 어떤 절차가 생기게 되는 것 같다. 동화책에서도 옷장 문을 열어 저 세계로 건너가는 사건과 상자의 뚜껑을 열어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이곳과 저곳의 한 끝 차이가 질적으로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루 하루가 지겹고 그냥 저냥 살아가는 것 같고, 오늘도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는 그런 지루한 나날들이 이어가는 것 같지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때 새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재끼듯 성스럽게 하루를 넘어간다면 우리에게도 구멍을 돌파할 내공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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