뢰지예괘(雷地豫卦䷏)를 말아서 뒤집은 도전(倒顚)괘가 지산겸괘(地山謙卦䷎)다. 겸괘(謙卦)는 예괘(豫卦) 바로 앞에 오는 괘다. 서괘(序卦)전에서는 “큰 것을 소유하면서 겸손할 수 있으면 반드시 즐겁기 때문에 예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큰 것을 소유함’은 겸손의 전제 조건이다. 재물이든 지식이든 많이 소유한 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겸손이다.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 낮추는 것은 겸손이라기보다 원래 낮고 힘이 없어서 더 낮추는 것이라 비굴(卑屈)함이나 아첨(阿諂)에 가까운 생존 전략이다. 아는 게 많거나 신분이 높아지면 스스로 낮추는 것이 쉽지 않다. 겸손하지 않으면 오만(傲慢)ㆍ거만(倨慢)ㆍ교만(驕慢)ㆍ자만(自滿)에 가까워진다. 겸손하지 않으면 어깨 힘이 들어가 뻣뻣해지며 스스로 만족하여 분발(奮發)하지 않아 더 이상 성숙해지기 어렵다.
계사전에 보면 공자가 “변화의 도를 아는 자는 신(神)이 하는 바를 알 것이다”라고 했다. 역(易)은 바뀜과 변화의 이치를 보는 것이다. 지산겸(䷎)에서 내괘의 양강(陽剛,양효)이 아래로 하나씩 움직이면 차례로 지수사괘(地水師卦䷆)ㆍ 지뢰복(地雷復䷗)이 된다. 이는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낮추고 겸손한 때<겸(謙䷎)>와 군사를 기르고 전문 능력을 갖추는 때<사(師䷆)>를 잘 보내야 에서 반환하여 약동하는 때<복(復䷗)>를 맞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뢰지예(䷏)괘에서 외괘의 양강(陽剛, 양효)이 위로 한 자리씩 움직이면 차례로 수지비괘(水地比卦䷇)ㆍ산지박괘(山地剝卦䷖)가 된다. 이는 표면에서 드러나는 열광과 즐거움의 때<예(䷏)>를 맞아 상승하여 친밀과 동맹의 때<비(䷇)>로 발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比䷇)의 때가 다하면 박탈과 붕괴의 박(剝䷖)으로의 변화가 도사리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뢰지예괘(雷地豫卦䷏)의 속효(2, 3, 4/3, 4, 5)로 재구성한 호괘는 수산건(水山蹇䷦)이다. 건(蹇)은 ‘절름발이’, ‘궁핍’을 상징한다. 순응하여 미리 함으로써 열광과 즐거움을 얻으려면 보이지 않는 속으로는 궁핍과 어려움을 극복해내야 한다.
初六, 鳴豫, 凶(초육, 명예, 흉) 초육, 즐거움이 밖으로 나타나니 흉하다.
초육은 중(中)의 자리가 아니다. 또 양강(陽剛)의 자리에 있는 음유(陰柔)이니 부정(不正)하다. 소인의 자리다. 즐거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할 때이다. 초육은 주효와 구사(九四)와 응하니 윗사람의 총애를 받는다. 소리내어 즐거움을 밖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모자라는 역량과 윗사람의 총애 덕분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따라서 흉하다.
六二, 介于石, 不終日, 貞, 吉.(육이,개우석, 부종일, 정, 길) 절개가 돌과 같이 견고하여 하루를 마칠 것도 없으니 바르고 길하다. 예괘(豫卦䷏)의 주된 괘는 구사(九四)다. 구사는 음의 자리에 양이 있어 부정(不正)하다. 또 외괘의 가운데가 아니라서 부중(不中)하다. 구사와 응(應)의 관계에 있는 초육, 비의 관계에 있는 구삼, 구오 모두 흉하거나, 후회가 있거나, 병이 있다. 구사와 관련이 없는 육이만 바르고 길하다. 육이는 내괘의 중간에 있고 음효가 음의 자리에 있으니 중정(中正)하다. 돌과 같이 견고하니 하루 종일 걸릴 일이 없다.
六三, 盱豫悔, 遲有悔(육삼, 우예회, 지유회) 육삼, 위로 쳐다며 즐거워 하니 후회가 있으며, 더디면 또 후회가 있을 것이다. 육삼은 음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부정(不正)하다. 또 소성괘의 중앙이 아니므로 부(不中)하다. 육삼은 주효인 구사와 비(比)의 관계에 있다. 구사만 믿고 구사를 위로 쳐다보면 후회한다. 그 후회가 더디면 다시 후회하게 된다.
九四, 由豫, 大有得.(구사, 유예, 대유득) 즐거워함을 주저하여 크게 얻음이 있으니, 친구들의 많은 비난이 있다라도 의심하거나 두려워 말라.
六五 貞疾, 恒不死(육이, 정질, 항불사) 육오, 바르지만 병이 있으며, 항상 병이 있어도 죽지 않는다. 육오 왜괘의 가운데 자리로 군주의 자리다. 음이 양의 자리에 있으므로 유약한 군주다. 부정(不正)하나 중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병이 있지만 죽지는 않는다.
上六, 冥豫, 成有渝, 无咎.(상육, 명예, 성유투, 무구) 상육, 즐거움에 빠져 혼미하나 변화가 있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육은 예괘의 끝이다. 변화가 요구되는 자리다.
열광과 즐거움에 이르는 방법은 천지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미리 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얻고 난 다음에는 그 즐거움을 과도하게 밖으로 드러내도 흉하고, 즐거워하며 위로 쳐다봐도 후회한다. 즐거움을 주저하면 크게 얻음이 있다. 즐거움에 빠져 혼미하면 병이 되니 변화를 주어야 죽음을 면한다.
'주역으로 글쓰기 > 글쓰기로 자강불식하는 주역(두마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수천수괘(水天需卦䷄) 기다림의 때와 태도는... (0) | 2023.08.01 |
---|---|
두고 보자 (1) | 2023.07.28 |
차이와 동일함에 대한 욕망 (1) | 2023.07.24 |
16. 뢰지예괘(雷地豫卦䷏) (1) 순응하여 미리하면 즐겁지 아니할까 (1) | 2023.07.01 |
수뢰둔괘(水雷屯卦䷂) (2) 머뭇거리며 때를 기다려야 (1) | 2023.05.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