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투기’라니? 분투(奮鬪)는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작가는 대학 때부터 줄곧 분투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싸움을 잘 한다. 싸우지 않는 것처럼 명랑하게 싸운다. 물리적인 힘을 쓰지 않고 눈빛으로 기세로 말로 다 조진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좀 느긋하고 설렁설렁하게 살 궁리를 해도 될 터인데, 또다시 분투라니. 인생은 싸움이다. 싸움을 피하다 보면 상대가, 때로는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진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한다. 싸우다 보면 정이 든다. 분투하는 인생은 늘 아름답다.
『동네책방 분투기』는 동네책방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이 들어 있다. 작가들의 삶의 궤적이 보인다. 작가들은 땅을 만나고 풀과 나무,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인연의 끈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삶이 피륙이 짜여진다. 그 위에 그려지는 삶의 무늬가 보인다. 동네책방 바이허니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문화(文化)가 보인다.
‘독ㆍ도랑 놀자’ 이야기에 나이테처럼 한 해 한 해 쌓여 다져진 연륜이 보인다. 책방지기로 이끈 책 몇 권의 이야기에는 영혼의 근육이 단단하게 다져진 작가가 보인다. ‘공이 날아올 때마다 너무 재지 않고 휘두르다 보면 단타도 치고 만루 홈런도 치게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운칠기삼’. 우연히 맞딱뜨리는 칠할의 운명을 필연적 만남과 성과로 바꾸는 작가의 순발력과 추진력이 보인다. 통섭, 디자인, 혁명이 보인다.
씨앗이 어둠을 뚫고, 딱딱한 흙덩이를 뚫고 발아하여 나무로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바이허니 건물이 세워지고, 그 공간 속에서 커 가는 지역문화가 보인다. 책을 보기 위해 왔다가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책을 본다. 그림을 보고, 타로, 스케치, 사진을 배운다.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눈다. 장을 담그고 나물을 무치면서 사람들의 눈빛과 타이밍과 삶의 이야기가 같이 버무려지는 터가 되는 바이허니가 보인다.
『동네책방 분투기』에 화풍정괘(火風鼎掛䷱)가 보인다. 정(鼎)은 가마솥이다. 솥에 삶은 음식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눠먹을 정도의 큰 가마솥이다. 솥 안에 물을 붓고 채소와 고기 등 음식 재료를 넣고 밑에서 불을 때면 솥 안의 음식들은 끓고 익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솥에 넣고 끓인다고 채소가 고기가 되고 고기가 채소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채소 그대로, 고기 그대로의 상태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채소에 고기 맛이, 고기에 채소 맛이 배어든다. 가마솥의 주인장은 모두가 조화를 잘 이루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과 불이 적절한지, 솥에 구멍이 생기지 않는지 살핀다.
-『동네책방 분투기』(박태숙, 강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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