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좀 길다. 책 한 권보다는 엄청 짧다.
이 책을 읽고 어떻게 글을 쓸까? 남이 쓴 시 한 편을 보고 내가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간단하다. 그런데 남이 쓴 시에 또다른 남이 평론한 글을 모아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인용된 시에 대한 내 감상을 말하기도 그렇고, 시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론을 다시 내가 요약하기도 뭣하다. 이 책은 평론이나 감상이 좀 길다. 읽어내기가 편하지는 않다. 인용된 시들이 대부분 인생의 모순이나 고통과 맞닿아 있어서 더 그렇다. 김용택의 『시가 내게로 왔다』와 대비가 된다. 김용택은 다른 시인이 쓴 한 편의 시에 대해 시만큼 짧게 말을 붙인다. 그 내용은 대중없다. 어떤 것은 또다른 시같고, 또 어떤 것은 그냥 평이하다. 사실 시를 잘못 해석하고 분석하면 그 생동하는 맛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신형철의 시화(詩話)는 칼질을 잘 해서 맛깔나게 장만한 요리와 같다. 좋아하는 독자가 많다.
고민하다 이렇게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인용한 시든, 신형철의 평론이든, 여기에 대한 나의 멘트든 모두 3문장 이하로만 뽑고 쓴다.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당신이 필요해요”
■신형철: 상호의존적인 약점이 있을 때 사랑은 성립된다.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상대가 필요한 사람은 대등하게 약하지 않다. 전자는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만, 후자는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것이다.
■나: 상대에게 의존하려는 것 없이 잘해주기만 하면 사랑이 잘 안 되겠구나. 어떤 남자는 어떤 여자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데, 어떤 여자는 어떤 남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떤 남자의 편견일까?
■백수광부의 아내, ‘공무도하가’: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신형철: 인생에는 막으려는 힘과 일어나려는 힘이 있다는 것.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
■나: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잠깐, 기다려보오. 내가 먼저 건너보리다.
■욥기: 주님께서는 내게 너무 잔인하십니다./ 힘이 세신 주님께서 힘이 없는 나를 핍박하십니다.
■신형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 오히려 신이 발명되고야 마는 역설.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은 인간이 오히려 신 앞에 무릎을 꿇기를 선택하는 아이러니.
■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신(神)을 발명할 수밖에 없다. 신이 있다고 해서 인간 세상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 세상이 아니게 된다. 신은 단지 인간의 불완전한 생각의 공백을 메꿔 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두 편: 이별은 우리가 천국에 대해 아는 모든 것/ 그리고 지옥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 크나큰 고통을 겪고 나면, 형식적인 감정들이 온다.
■신형철: “천국”이라는 말은 그를 위로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으로 간다는 말은 단지 그 사람이 나를 떠난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기 뿐이기에.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뜨기만 하면 지금 여기가 지옥이므로.
■나: 천국이나 지옥은 이 세상의 불합리한 선악을 견뎌내기 위한 인간의 발명일 뿐이다. 저 세상의 천국이나 지옥과 달리, 이 세상의 천국과 지옥은 이해하기 힘들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에이드리언 리치, ‘강간’: 당신은 당한 그 범죄에 대해 유죄이므로/...당신이 말하는 세부사항들이 고해신부의 초상을 그려내는 것처럼 들린다면/당신은 삼킬 것인가, 모두 부정할 것인가, 거짓말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신형철: 무고죄로 감옥에 갈 수도, 정신이상자로 병원에 넣어질 수도 있다.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다. 육체적 강간과 정신적 강간, 혹은 개인적 강간과 사회적 강간.
■나: 모든 신고는 피해 사실을 말해야 하는데 강간 피해는 말하기 참 어렵겠다. 돈을 빼앗기거나 두들겨 맞은 것은 그대로 말하면 되지만.
■최승자, ‘20년 후에, 지芝에게’: 살아있다는 건, /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신형철: 비록 깨어지기 쉬운 아름다움이지만 삶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어린 ‘지’에게 생에의 찬가(讚歌)를 들려주고 싶지만 삶의 진실은 비가(悲歌) 쪽에 있다는 생각.
■나: 인생이란 참 이상하고 묘하다. 아슬아슬함이 없다면, 고통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고 슬픈 일이 없다면 찬란함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찬란하기만, 고통이 있더라도 견딜 수 있는 조그마한 것만 있기를 바란다.
■윌리엄 세익스피어, ‘소네트73’: 한 해 중 그런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보리라/.....누워 있는 그런 불의 희미한 가물거림을/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신형철: 시인도 늙고 청년도 늙고, 그보다 먼저 사랑이 늙을지도....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것이 진부한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청년도 내 안에 있다.
■나: 나 자신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사랑 그 자체든....머지 않아 늙고 잃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린다면, 그러기 전에 더 사랑해야 하리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중 제2비가’: 너희들이 그처럼 행복하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은, 애무가 시간을 멈추기 때문이다./....허나 첫 사건의 놀라움과 창가에서의 그리움을 이겨내고,/ 함께 거닐던 ‘첫’ 산책, 단 한 번뿐이던 그 정원에서의 산책을 견뎌냈을 때/....너희들이 발돋움을 하며 입술을 맞대고 서로 마실 때/ 아,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가는가!
■신형철: 그 모든 ‘첫’들이 지나고 나면 연인들은 멀어진다는 것. ‘절제’란 사랑이 탕진되지 않도록 가장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는 기술인 것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나: 사랑도 절제와 균형을 잃으면 그릇처럼 깨어져 사금파리가 된다. 칼이 되어 서로를 찌르고 베어 상처를 남긴다.
■ 이영광, ‘사랑의 발명’: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신형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네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환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 어떤 사람을 많이 사랑하면 그 사람을 신(神)처럼 신봉하거나, 그 사람에게 신(神)처럼 모든 걸 다해 주려고 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는 살아도 신(神)을 믿고 살지는 않는다.
■나희덕 ‘허공 한 줌’: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 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 주었어.
■신형철: 시인은 저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에서, 그 사랑의 배후와 근저에 있는 강렬한 ‘움켜쥠’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성숙한 거리를 두는 일의 깊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나: 사랑의 크기가 움켜 쥐는 힘에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를 움켜 쥐듯이 적당한 여유를 두고 쥐어야 한다. 사람을 움켜 쥐려고 하는 것은 마치 허공이나 바람을 움켜 쥐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메리 올리버, ‘기러기’: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당신의 상상력에 자기를 내맡기고/ 기러기처럼 그대에게 소리쳐요, 격하고 또 뜨겁게-/ 세상 만물이 이루는 가족 속에서/ 그대의 자리를 되풀이 알려주며.
■신형철: 자신이 따르는 도덕적 이상에 오히려 억압당해서 자신을 언제나 죄인 취급하고 고행에 가까운 참회를 각오하는 어떤 ‘종교적’ 독자에게 이 시는 그것이 어리석은 자기학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 혹은 자기와 싸우다 패배하여 자책과 회한의 날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 이 세상에는 그럼에도 당신의 자리가 분명히 있다고 말하는 시다.
■나: 나도 이제는 ‘착하게’ 살려고는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김시습, ‘나는 누구인가’: 네 몸은 지극히 작고/ 네 말은 지극히 어리석네/ 네가 죽어 버려질 곳은/ 저 개굴창이리라.
■신형철: 생육신. 살아남은 자의 자기 혐오. 제 안이 잠재적 배신자와 지긋지긋한 싸움을 해야 했으리라.
■나: 나도 살아남은 것일까? 나도 내 안의 배신자와 싸움을 자주 한다, 아직도.
■황동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추억이란 애써 올라가/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꼿꼿해진 생각이 아닐까./ 어느샌가 실란(蘭)이 배경 그림처럼 사라지고/ 개미만 투명하게 남는다.
■신형철: 인정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즉 외로울 때, 그것은 고통이자 위험이 된다.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나를 둘로 나누어 대화하게 만든다는 것.
■나: 외로움이 쌓이면 우울증이 되고, 고독이 쌓이면 철학이 된다. 외로움이 극복되어 환해지면 고독이 되는구나.
■윌리스 스티븐스, ‘아이스크림의 황제’: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의 피날레가 되도록 해./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니까
■신형철: 한 생애를 통해 다양하게 존재했던 ‘보임’이 아주 단순하고 투명한 ‘있음’으로 축소되는 순간이란 언제인가, 바로 장례식이다.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은 녹는다.’ 만약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진실이라면, 우리를 통치하는 ‘유일한’ 황제는 바로 아이스크림의 황제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 “불교의 가르침에는 특별히 공부할 것이 없으니, 다만 평상시에 일없이 똥을 누고 소변을 보며,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서 쉬는 것일 뿐”이라고 한 임제 선사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며 사는가?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은 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한강,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신형철: 고약한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을 알려주는 죽음이 그 진실에 응답할 기회까지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반 일리치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죽기 전에’ 미리 죽어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나: 죽을 때까지 나는 안 죽으리라 생각하고 살지만, 죽는 순간에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죽을 때 바른 말을 하게 된다면, 매일 아침 오늘 죽는 날이라는 생각을 해야겠다.
■아르킬로코스, ‘방패 때문에’: 방패 때문에 사이아의 누군가는 우쭐하겠지/... 가져가라지. 그에 못지않은 것을 나는 다시 가지리라. ■사포, ‘가장 아름다운 것’: 어떤 이들은 기병대가, 어떤 이들은 보병대가/...나는 사랑하는 이라 말하겠어요.
■신형철: 애국심은 사악한 자들이 내세우는 미덕? 선량한 국민의 미덕?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불과하다.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애국이란, 그들이 사랑하지도 않는 국민에게까지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할 생각이 없지만 당신들은 우리를 포함한 국민 모두를 사랑해야 해’라고 말하는 일이지 않은가.
■나: 신(神)을 매개하는 자가 신을 죽이고 자신이 신(神)보다 더 나은 존재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국민이 모아 준 권력을 잡은 이들이 자신이 곧 국가인 것처럼 국민의 애국을 심판하기도 한다.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신형철: 불가피하게 떠나와야 할 과거의 나인데, 막상 떠나려 하자 눈물겹게 그립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가 불길하다. 윤동주는 ‘최후의 나’를 향해 간 것이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 부정이 싫어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덮으려 더 큰 죄를 짓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젊은 과거의 자신이 ‘희망과 사랑처럼’ 애틋하게 그립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으로 다가가는 ‘최후의 윤동주’ 모습이 떠올라 그저 가슴만 먹먹하다.
■황지우, ‘나는 너다44’: 문이 닫히고 나는 칼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로 갔다./....몸이 없어지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부끄러움의/ 재 한 줌/
■신형철: 반복되는 고문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육체가 있다는 사실을 저주하였고 친구를 무고(誣告)하는 허위 자백을 하고 만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친구는 그가 보는 앞에서 같은 고문을 당해야 했다.
■나: 한 때 교육운동을 하다 구치소에 갇힌 적이 있다. 고문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정보과 형사의 덩치와 아우라에 쫄린 적이 있다. ‘몸이 없어지는’ 고문이 반복되는데도, 살아있으면 어떻게 버틸까.
■밥 딜런,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인정하라 그대 주위의 물이 차올랐다는 것을./ 그리고 받아들여라/ 곧 당신이 뼛속까지 젖게 될 것임을./ 당신의 시간이 구해낼 가치가 있는 것이면/ 헤엄치기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니면 돌처럼 가라앉게 되리니./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신형철: 밥 딜런은 1960년대의 진보적 열기 속에서 그 물결이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이라고 믿었고 그것을 선언한다. 이 변화는 공평하게 관철된다. 그것은 주위에 물이 차오르는 일과 같아서 살고 싶으면 당장 헤엄쳐야만 한다.
■나: 세상은 늘 변하고, 변한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이 완성되고 끝나면 그것은 새로운 미완의 시작이다. 변하는 물결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헤엄쳐야 한다.
■신동엽, ‘산문시1’: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신형철: 광부와 농민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부르짖던 시대도 있었지만, 진정한 유토피아는, 이처럼 광부와 농민이 이해 못할 작품이 없을 만큼 그들에게 교육과 시간이 제공되는 사회다.
■나: 광부와 농민만이 아닌 모든 국민이 하이데거ㆍ러셀ㆍ장자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이 제공되는 유토피아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다. 광부, 국무총리, 서울역장이 동등한 조건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간단하게 실현할 수 있다. 국무총리와 같은 기관장들이 국세로 영위하는 삶의 지위를 보통 서민 수준으로 만족하면 된다.
■이성복. ‘생에 대한 각서’: 사람 한평생에 칠십 종이 넘는 벌레와 열 마리 이상의 거미를 삼킨다 한다 나도 떨고 있는 별 하나를 뱃속에 삼켰다...여러 날 굶은 생쥐가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엉덩방아 찧다가 끝내 날개를 얻었다 하리라
■신형철:항구적인 고통과 초월에의 노력이 생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날개’를 얻었다니, 언제 또 어떻게? 결국 우리는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허덕이다기 죽음과 더불어 놓여난다는 뜻일까?
■나: 사람은 고통에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도 없다면 존재 이유가 없어져 육체와 영혼이 무력해진다. 죽을 때까지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그것을 극복하고 초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이다.
■레이먼드 카버, ‘발사체-무라카미 하루키를 위하여’: 당신이 내 소설들에 되풀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한/ 고통과 굴욕에 대한 대화 미끄러져들어갔다/...무언가가 날아와 내 옆머리를 강력하게 가격해서/ 내 고막을 망가뜨리고/ 내 무릎에 떨어졌다,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신형철: 바로 이 장면에, 무라카미가 카버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요소라고 지적한 것들, 즉 고통, 우연, 굴욕이 이미 다 들어 있다. 얼음과 눈을 뭉친 것이었으니 흉기라고 해야 할 것에 맞아 고막이 터졌는데(고통), 친구란는 놈들은 그것이 3인치의 틈을 통과해 제 친구에게 명중했다는 놀아운 결과(우연)에 오히려 난리법석이고, 그런 그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이 카버는 끔찍했다(굴욕).
■나: 우연으로 인한 고통이 많을까, 필연으로 인한 고통이 많을까? 운칠기삼(運七技三)이 맞다면 필연으로 인한 것보다 우연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클 것이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굴욕적일까?
■김수영,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마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신형철: 누구보다 수신(修身)에의 강박이 심했던 그는 맑은 정신으로 제 욕망을 관찰하기를 즐겼다. 바라는 것이 많은데, 이룬 것이 너무 없어 당황스러울 때, 그때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가 절제를 “나의 귀여운 아들”이라 한 것은 그것이 ‘내가 낳았으나 오히려 나를 인도하는’ 생각이기 때문이고, “나의 영감(靈感)”이라 한 것은 그것이 향후 시작(詩作)의 지침이 되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나: 빛나는 업적을 욕망하지 않으면, 서두를 일이, 당황할 일이 줄어든다. 공자가 말한 마음이 욕망하는 바에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는 칠십은 욕망에 대한 절제력이 높아진 걸까, 욕망이 줄어든 것일까?
■필립 라킨, ‘나날들’: 나날들이 아니라면 우리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아, 그 문제를 풀자면/ 사제와 의사를 불러들이게 되지/ 긴 코트를 입은 채로/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그들을.
■신형철: 종교는 영적 극복을, 의학은 죽음의 과학적 연기를 꿈꾸게 한다. 사제와 의사의 돌진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위안인가 속박인가? 지금 여기에서 불행한 사람에게 사후 세계를 설파하는 일은 그런 ‘위안’에 ‘속박’ 되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사제는 영생을, 의사는 생명 연장을 파는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생도 생명 연장도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하는 사회가 됐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신형철: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란 없으니, 일단 하나의 길을 택했다면, “가지 않은 길”에는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 작품은 길과 달라서, 우리는 시의 맨 처음으로 계속 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
■나: 돌이킬 수 없는 선택도 있지만, 해보고 아니면 말면 되는 선택들이 의외로 많다. 더구나 선택하는 순간에 그 길의 끝이 보이는 경우는 없다. 길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하다보면 길이 열리고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 편의 시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3문장 이하로 뽑는 것도, 3문장 이하로 멘트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과 황지우의 ‘나는 너다44’가 유독 더 그랬다. 시인의 삶이 그대로 느껴져 가슴만 먹먹해져, 한 마디 말이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한 편의 시에 대해 인상적인 구절을 3문장 이하로 뽑고, 3문장 이하로만 멘트하는 방법, 실제로 해보니 의외로 괜찮은 면이 있었다. 몇 번을 거듭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몰입과 집중의 효과가 있었다. 나중에 다른 곳에 인용하기도 좋다.
신형철의 평론에서 3문장 이하로만 뽑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의 평론 중에 애니메이션 <작은 큐브로 만든 집>이 은유하는 의미에 대한 설명은, 나도 써먹고 싶어 마지막에 따로 적어본다.
“말하자면 이런 은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래쪽에서 위로 점점 물이 차오르는 일이며 그렇게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지난 시간들은 수몰되는 집처럼 그 형태 그대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막을 수는 없고 다만 잠수하듯 상기해볼 수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한 층씩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그는 역순으로 과거와 재회한다. 아직 아내가 살아 있던 때를, 딸이 결혼할 남자를 데려왔던 때를, 어린 딸이 식탁 주위를 뛰어다니던 때를, 그리고 아직 도시가 물에 잠기기 전 그와 아내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던 때를, 어느새 바닥(1층)까지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자신의 집은 너무 높고 멀다. 언제 이만큼이나 산 것인가.”
『인생의 역사』(신형철)를 읽고
'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 > 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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