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겸괘(地山謙卦䷎)(1) 겸손은 힘들다
謙 亨 君子有終(겸 형 군자유종) 겸은 형통하니 군자는 끝마침이 있을 것이다.
단왈, 겸이 형통하다는 것은 하늘의 도가 아래로 교제하여 광명하고 땅의 도가 아래에 있으나 위로 올라가서 행한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여 겸손한 것에 더해 주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여 겸손한 데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고,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겸은 작지만 광대하고 낮으나 뛰어넘을 수 없으니 군자의 끝마침이다.
상왈, 땅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괘이다. 군자가 보고서 많은 것을 취하여 적은 것에 더해 주고 물건을 저울질하여 공평하게 베푼다.
겸괘(謙卦)는 산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다. 높고 큰 것이 도리어 낮은 것의 아래에 있는 상이다. 겸(謙)은 겸손함이다. 있으면서도 자처(自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겸손의 전제 조건은 ‘있음’이다. 겸손은 덕(德)이든 지식이든 권력이든 재물이든 지위든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가득 차거나 높은 사람이 유일하게 쇠퇴와 혼란을 피하는 방법이 항상 겸손을 유지하는 것이다. 겸손함은 가장 유익하고 해가 없다. 하늘, 땅, 귀신, 사람 모두 가득 찬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겸손은 작고 낮은 자세로 공평함을 베푸는 자세다.
‘있는’ 사람이 겸손한 경우를 보기 어렵다. 특히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더 그렇다. 인사말을 할라치면 자기 자랑 반이고 나머지 반은 협력 관계에 있는 다른 권력자에 대한 칭찬이다. 그리하여 그 권력자로부터 칭찬을 얻는다. 칭찬을 품앗이한다. 그렇게 해야 과감함과 카리스마가 있어 보여 당선이 되는 모양이다. 절대자나 신(神)인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남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겸손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1도 없는 정치인이 있다. 이런 정치인들은 ‘끝마침’이 없다. 시작은 어마무시하게 자유롭고 정의롭고 민주적이고 공정하고 공평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다. 이런 정치인은 군자도 아니지만, ‘끝마침’도 있을 리 없다. 끝마칠 수 없는 말을, 주워담지 못할 말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작고 낮은 자세로 베푸는 자세가 없기 때문이다. 시작한 대로 ‘끝마치려면’ 끊임없이 덜어내고 자신을 낮추며 분발해야 한다.
있으면서 있는 체하지 않는 것은 힘들다.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겸손하지 않다. 그러니 이제 겸손은 없는 사람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인 듯한 착각이 든다. 천자문(千字文)에 ‘상화하목(上和下睦)’이란 말이 나온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온화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 온순하다는 뜻이다. ‘온순’이 겸손처럼 생각된다. 없는 사람이 살기 위해 있는 사람에게 공손하고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겸손’인 것처럼 착각이 들 때가 많다.
어쩌다 문득 ‘겸손’이란 덕목도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있어도 없는 척 겸손해야 되지 않을까. 최고 권력자가 아니면 성질이 있어도 죽이고 겸손해야 생존에 이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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