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지곤괘(重地坤卦䷁)(2)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를 것
初六, 履霜堅氷至(초육, 리상견빙지) 초육,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를 것이다.
六二, 直方, 大, 不習, 无不利(육이, 직방, 대, 불습, 무불리) 육이, 바르고 방정하면 방대할 수 있고 실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롭지 않음이 없을 수 있다.
六三, 咸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함장가정, 혹종왕사, 무성유종) 육삼, 아름다움을 머금어서 바름을 지킬 수는 있으나, 혹 왕의 일에 종사하면 이룸은 없어도 마침은 있을 것이다.
六四, 括囊, 无咎无譽.(육사, 괄낭. 무구무예) 육사, 주머니를 묶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六五, 黃裳, 元吉.(육오, 황상, 원길) 육오, 황색 치마이니 크게 길할 것이다.
上六, 龍戰于野, 其血玄黃(상육, 용전우야, 기혈현황) 상육,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초육,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를 것이다.’ 은미한 것을 보고 드러날 것을 알며, 작은 것을 방비하여 점차 커지는 것을 막는다. 작고 미세할 때 조심하고 그 세력이 매우 적을 때 잘하면 그것들을 간파하여 조기에 방비하고 제거할 수 있다. 몸에 없던 병이 생기는 것도 처음에 아주 작은 식습관이나 잘못된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인품이나 능력도 아주 사소한 것이 축적되어 크게 좋아지거나 아주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작은 변화의 조짐을 보고 큰 변화에 이르는 추이를 알아차려야 되는 경우도 있다. 늦가을 상강(霜降)에 내리는 서리를 보고 점점 진행되어 겨울이 되면 단단한 얼음이 얼 것을 생각해서 방비해야 한다. 사계절로 보면 봄은 목(木)의 기운이고 음(陰)에서 양(陽)으로 변하고, 여름은 화(火)의 기운으로 양(陽) 지배적이다. 가을은 금(金)의 기운으로 양에서 음으로 변하고, 겨울은 수(水)의 기운으로 음(陰)이 지배적이다. 초육(初六)은 음(陰)이 시작되는, 서리가 내리는 때이다.
곤괘의 근본적인 성질은 ‘지극한 부드러움’[至柔], ‘지극한 고요함’[至靜], ‘뒤에 가며 주인을 얻음’[後得主]로 표현되는 ‘순종함’이다. 유약함과 순종으로 강건함과 앞장 서는 주체적인 것을 이기려면 작고 사소한 것을 순차적으로 쌓아가야 한다. 선을 쌓는 것과 같이 하루아침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축적해서 큰 결과를 얻어야 한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적불선지가필유여앙 (積不善之家必有餘殃)! 남녀로 보면 남자들이 대체로 큰 한 방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여자들은 작지만 좋은 것을 꾸준히 쌓아가서 큰 경사(敬事)를 얻으려는 속성이 있다. 이는 도덕경 36장에 나오는 ‘뺏고 싶으면 먼저 주어야 하고…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과 상통한다.
사실 강유(剛柔)가 서로 대립되어 어느 쪽을 이겨야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부드럽고 어떤 것은 강하다. 어떤 때는 부드러워야 되고, 어떤 때는 강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는 부드럽고 강함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중지곤괘(重地坤卦䷁)의 초육이 움직이면 지뢰복괘(地雷復卦䷗)가 된다. ‘복(復)’은 반환이고 회복이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다. 복괘의 초구는 ‘머지않아 회복함’이고 ‘뉘우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음’이다. 작은 변화에서 큰 변화에 이를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뉘우치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 반환(返還)하는 것과 맥이 닿는다.
‘육이, 바르고 방정(方正)하면 방대(尨大)할 수 있고 실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롭지 않음이 없을 수 있다.’ ‘직방(直方)’은 순종하는 ‘곧음’이고 ‘바름’이다. 방(方)은 모가 나는 것이고 각(角)이 생기는 것이다. 방정(方正)은 표창장 문구에서 자주 봤다. ‘방정맞다’라는 말이 떠올라 뜻이 헷갈리기도 했다. ‘방(方)’이 왜 방향(方向)이나 방법 또는 ‘바르고 점잖음’의 의미로 쓰일까. 모가 나지 않으면 방향이 없다. 어떻게 하려면 방향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르게 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자연스런 본능적 충동 욕구를 절제시켜 모나게 반듯하게 하는 것이 예의고 바름이다. ‘방정(方正)’은 기존 질서체제와 예의에 순종하는 ‘바르고 점잖음’이다. 직(直)은 정(正)이고 방(方)은 의(義)다. 직방(直方)은 정의(正義)로움이다. 가장 보편적인 가치관에 순종하여 정의롭다면, 실패할 리 없고 광대하지 않을 리 없고 이롭지 않을 리 없다.
중지곤괘(重地坤卦䷁)의 육이가 움직이면 지수사괘(地水師卦䷆)가 된다. 내괘인 곤괘(坤卦☷)가 감괘(坎卦☵)로 변했다. 험난해진다. 사괘(師卦䷆)는 무리를 이끄는 장수의 상이다. 올바름을 굳게 지키고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어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육삼, 아름다움을 머금어서 바름을 지킬 수는 있으나, 혹 왕의 일에 종사하면 이룸은 없어도 마침은 있을 것이다.’ 분투노력하고 전력을 다하여 공로와 영예를 건(乾)에 돌리고 자기는 명성을 이루지 않으니, 안목이 깊고 도랑이 넓어 자연히 머금고 감출 수 있다. 공을 이루어도 군주에게 돌리는 아름다움이 있다.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은 끝까지 잘 해낸다. 고요하고 움직여서 따르고 충성한다. 신중히 하고 나아가는 것을 조급히 하지 않는다. 나아갈 수도 있고 물러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아감에 신중히 해야 한다.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다가 드러내야 할 때는 반드시 드러낸다. 비록 자신에게 훌륭한 재능은 있지만 머금고 드러내지 않아 명성을 이루지 않는다. 곤(坤)의 도이고 땅의 도이다. 신하의 도이고 아내의 도이다. 군주나 남편이 크게 시작하는 것을 알고 곤(坤)은 만물을 도와 완성시킨다.
중지곤괘(重地坤卦䷁)의 육삼이 움직이면 지산겸괘(地山謙卦䷎)가 된다. 내괘인 곤괘(坤卦☷)가 간괘(艮卦☶)로 변했다. 간(艮)은 ‘그침’이다. 겸(謙)은 ‘겸손’, ‘낮춤’이다. 안목이 넓고 도량이 깊지만 그치고 겸손하게 낮추는 상이다.
‘육사, 주머니를 묶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음으로 음의 자리에 있다. 위 아래가 교제하지 않아 응(應)도 없다. 건과 곤의 도가 끊어지고 현자(賢者)가 은둔하는 때이다. ‘괄낭’은 말을 하지 않으며 지혜를 보이지 않으며 몸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의 표현이다. ‘선을 행하여도 이름이 날 정도로 하지 하지 말고 악을 지어도 형벌에 저촉되지 않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편으로 근신하여 자신을 지키고, 안으로는 덕을 채우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삼가면 해가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명예도 없겠지만 당연히 허물도 없다.
중지곤괘(重地坤卦䷁)의 육사가 움직이면 뢰지예괘(雷地豫卦䷏)가 된다. 외괘인 곤괘(坤卦☷)가 진괘(震卦☳)로 변했다. 진(震)은 ‘움직임’이다. 예(豫)는 ‘열광’, ‘즐거움’이다. 내호괘에 간괘(艮卦)의 ‘그침’이 있으니 움직임에 신중하고 겸손할 수 있어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육오, 황색 치마이니 크게 길할 것이다.’ 황색은 중앙과 땅을 상징한다. 천자문의 천지현황(天地玄璜)에서도 현(玄)은 하늘이고 황(黃)은 땅이다. 위에 입는 옷을 의(衣)라 하고 아래에 입는 옷을 상(裳)이라 한다. 황상(黃裳)은 곤(坤)의 유순(柔順)한 도를 말한다. 비록 지위는 높지만 유순한 덕을 지키면 크게 길할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기꺼이 남의 아래에 처할 수 있으니 지극히 유순하되 공손하며, 고요함을 지키되 앞장서지 않는다.
중지곤괘(重地坤卦䷁)의 육오가 움직이면 수지비괘(水地比卦䷇)가 된다. 외괘인 곤괘(坤卦☷)가 감괘(坎卦☵)로 변했다. 감(坎)은 ‘험난함’이다. 비(比)는 ‘친밀’, ‘동맹’이다. 여전히 내호괘에 간괘(艮卦)의 ‘그침’이 있으니, 위에 순종하고 아래와 친밀해야 한다.
‘상육,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상육에 이르면 음이 지극히 왕성하게 발전하여 양(陽)과 대등한 데 이른다. 음(陰)이 왕성하여 양과 대등할 정도에 이르면 반드시 양과 서로 싸운다. 용이 들에서 싸운다는 것은 곤(坤)과 건(乾)이 싸우는 현실을 말한다. 현(玄)은 하늘의 색이고 황(黃)은 땅의 색이다. 현황(玄黃)은 천지와 음양이 뒤섞임을 표현하지만, 여전히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임을 말하기도 한다.
중지곤괘(重地坤卦䷁)의 상육이 움직이면 산지박괘(산지박괘䷖)가 된다. 외괘인 곤괘(坤卦☷)가 간괘(艮卦☶)로 변했다. 간(艮)은 그침이다. 박(剝)은 ‘박탈’, ‘붕괴’다. 음이 양을 깎는 상이며, 곤(坤)이 유순한 도가 있지만, 왕성하여 양과 싸우며 붕괴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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