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山火賁 (산화비)
䷕(산아래불) 艮上離下(간상리하)
비(賁)괘는 형통함을 상징한다.
비괘는 유가 강을 장식하여 주니 음양이 조화되어 형통함을 보여주고, 또 강이 유를 장식하여 주니 유는 원래 유약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강의 협력을 얻었기 때문에 작은 정도의 수행은 적극적으로 추진하여도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음양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천체의 운행 현상이요, 문명이 그 정도를 지나치지 않는 경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인류의 문화인 것이다. 천체의 운행 현상을 보고 천지의 변천을 살피며, 인류의 문화를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한다.
(비 괘의 모양을 살펴보면 상괘와 하괘를 합하여 강을 의미하는 양효가 셋, 유를 의미하는 음효가 셋씩 있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그 모양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그래서 유효는 강효를 장식하여 강과 유가 서로 조화되므로 만사가 형통할 상태이며, 또 강효는 유효를 장식하여 주는 형상이 되므로 유약한 유효이긴 하지만 강효의 힘을 얻어 그다지 강대하지 아니한 정도로 적극적인 전진을 하여도 좋다는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大象(대상) 산 아래 불이 타고 있는 것이 비 괘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모든 정치를 밝게 하고, 구태여 형옥을 결정하지 아니한다.
初陽(초양) 발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수레를 버리고 도보한다. 의(義) 아닌 방법으로 출세하려 하지 아니한다.
(초양은 괘의 맨 아래 위치에 있으면서 양효에서 유능한 인물이므로 발을 장식하는 형상이다. 그리고 맨 아래에 놓여 있는 그 모습이 타지 않은 형상으로 보이므로, 수레를 타지 않는 것은 출세하지 않음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二陰(이음) 그 수염을 아름답게 꾸민다. 상사의 신임을 얻어 함께 영달한다.
(이효는 음효로서 그 형상이 삼효에 수염을 달아 놓은 것 같다. 수염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위엄과 외관을 갖추는 것으로 귀한 신분임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상사(삼효)의 신임을 얻어 함께 영달하는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三陽(삼양) 아름답게 빛이 나고 윤기가 흐른다. 나라의 형세는 번영하여지고 문화는 빛이 난다. 길이 한결같이 하여 이 상태가 변함이 없으면 마침내는 이를 침범할 자 없으리라. 길하다.
四陰(사음) 화려하다. 그러나 또 소박하다. 이렇게 조화 있는 나라로 이끌어 가는 일이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가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스스로 의심한다. 백마를 타고 사람을 방문하는 것은 남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서로 협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있으므로 마침내 아무런 허물도 없으리라.
五陰(오음)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다. 여러 외국에서 예폐를 보내온 비단이 가득 쌓인다. 한때 비난을 받는 일이 있으나 마침내는 나라 안이 기뻐하리라. 길하다.
上陽(상양) 순백하게 장식한다. 지나친 화려를 버리고 순수하고 검소한 기풍을 기른다. 아무런 허물도 있을 수 없다. 마침내 군주는 그 뜻을 이룩하리라.
후기(後記)
산화 비 괘는 산을 의미하는 간괘가 위에 있고 불을 의미하는 리괘가 아래에 있다. 그래서 산에 불이 타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비」는 꾸민다, 장식한다, 아름답게 한다는 뜻이다.
산이 불타고 있는 광경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불이 크면 클수록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도대체 불타는 광경은 어느 것이나 아름답다. 네로는 로마의 시가에 불을 지르게 하고는 그 무수한 불줄기가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전 시가를 삼키고 타오르는 모습을 궁형의 계단 위에 높이 서서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광경을 어떠한 용어를 써서 멋지게 표현할까를 생각하며 시상에 잠겼다고 하거니와 네로 아닌 모든 사람의 눈에도 큰불이 활활 타오르는 광경은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이 괘는 산화의 상징을 「비」즉 장식한다, 아름답게 한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보다.
아름답게 꾸민다는 것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해 준다. 그것을 미라고 한다. 미는 사람에게 밝은 꿈을 가지게 하고 사람의 생활에 빛과 광휘를 던져 준다. 인간사회를 화려하고 세련되고 운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어느 의미에서는 인류 생활의 역사는 美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 미의 창조를 위한 노력의 누적이 바로 문화인 것이다. 하늘에는 별이 있어서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있어서 곱다면 문화는 인간사회에 있어서 별이며 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하늘의 별처럼 땅의 꽃처럼 인간사회를 수놓아주는 문화도 그 정도를 지나치면 도리어 해독을 가져온다.
인심은 사치와 향락에 빠지기 쉽고 사회의 풍조는 형식과 허례에 치우치기 마련인 것이다. 사치와 향락에 빠진다는 것은 허영과 퇴폐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벌써 자제와 반성을 기대로 할 수 없다. 자제와 반성이 없는 마음, 그것은 내리받이 길을 굴러떨어지고 있는 수레바퀴처럼 몰락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실질 없는 형식은 생명 없는 조화 같은 것이다. 제아무리 세련된 예절과 감미로운 언어를 구사할지라도 그 마음에 존경하는 생각이 없고 성의 있는 구석이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몸짓에 불과한 것이다. 결코, 사람의 마음을 한 치도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맞닿을 수 없는 사회, 그것은 불신의 사회인 것이다. 사람이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 공허한 제도와 예의와 문물 따위의 번문욕례(煩文縟禮)만이 잡초처럼 무성한들 그것이 어찌 문화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벌써 참된 의미의 문화는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가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괘에서는 이러한 폐단에 빠지지 아니한 문화 -문명이 그 정도를 지나치지 않는 경지에서 머무르는 것이 옳은 문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비 괘는 상괘와 하괘를 통하여 강을 의미하는 양효가 셋, 유를 의미하는 음효가 셋씩 있어서 음과 양―강과 유가 알맞게 섞여, 형태의 미관을 이룩하고 있다. 또 비 괘는 소양을 의미하는 간괘와 소음을 의미하는 리 괘로 형성되어〈주역〉의 논리로 보아도 음양이 서로 조화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음과 양이 서로 조화되고 강과 유가 서로 균형된 상태는 천체의 운행현상을 의미한다. 해와 같이 운행을 그르치지 않고 밤과 낮이 순서를 어기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음양의 조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화에서도 질(본질本質)과 문(외관外觀)이 균형을 이루고 참된 문화, 건전한 문화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공자도「질이 문 보다 치우치면 조야(粗野)하고 문이 질 보다 치우치면 문약에 흐르나니 문과 질이 혼연일체 조화를 얻어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현암사 〈논어〉-고 하였다.
이 괘는 그 효사 속에서「화려하다. 그러나 또 소박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일면이 있고, 소박하면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그러한 문화야말로 문화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강과 유로 설명하여도 같다. 강은 강강(剛强)한 것이요, 유는 유(柔)한 것이다. 사회가 건전하려면 강강한 기둥이 없을 수 없고, 사회가 평화하려면 유화한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공존하여야 하고 조화되어야 한다. 강강이 지나치면 모나기 쉽고 모가 나면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것은 벌써 충돌하는 마음들이다. 유화가 지나치면 늘어지기 쉽다. 축 늘어진 마음이면 그것은 이미 스스로 가눌 수도 없고 거두어 잡을 수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기에「지나치게 강하면 부러지고 지나치게 유하면 늘어져 못 쓰게 된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관은 현대에서도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견해가 아닐까 한다. 더구나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우리의 조상들의 지나친 형식과 문약에 떨어졌던 문화생활의 피해를 유전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 괘는 한 나라, 한 시대의 문화를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회사의 운영에서도, 개인의 처세에서도 계시하는 바 있다.
당신의 결의와 노력 여하에 따라 이 괘로 하여금 싱싱하고 건전한, 떠오르는 아침 해 같은 발전 도상의 아름다움으로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몰락 직전에 있는 퇴폐하고 쇠잔한 사양의 잔광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당신의 정신이 선택할 뿐인 것이다.
괘풀이
「비」는 꾸민다, 장식한다는 뜻. 아무리 외관을 꾸며도 내용은 같은 것이다. 말을 아름답게 꾸며도 진심이 없는 것을 보인다. 사기를 당한다든가 남에게 속기 쉬운 경우에 잘 나오는 괘다. 겉치레 좋은 말에 조심하라. 작은 일에는 비교적 길하나 큰 계획이나 사업 등에는 선견의 명이 없으면 실패할 염려가 있다. 사전에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친구나 아는 사람 사이에 교제가 중단되는 일이 생긴다.
만일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큰소리나 허세를 피우지 말고 빨리 이쪽에서 굽혀 들어감이 좋다.
예술·예능·방송 관계 같은 비교적 화려한 일에는 당신의 새로운 기획과 아이디어가 성공할 기회가 있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좋다. 좋은 협력자도 나타날 것이다.
사업의 경영에는 허세나 겉치레에 치우치지 말고 내용의 충실과 실력양성에 유의하면 형통하리라
[운수]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생활방식 때문에 괴롭히고 있다. 이때 긴축함이 좋다. 그러나 예술·예능·방송 관계에 종사하는 경우라면 그러한 생활방식이 도리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소망]이루어진다. 그러나 조금 늦어진다.
[혼담] 결국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겨냥이 빗나가는 형세에 있다. 결혼 이외의 교섭이나 취직 따위도 당분간 보류함이 좋다.
[임신] 순산, 딸
[건강] 열병이면 중증의 징조가 있다.
[교섭·분쟁] 사이에 사람을 넣으면 길하다.
[여행] 해도 좋다.
[실물] 찾기 어렵다.
[사람이나 소식을 기다림] 늦기는 하나 온다.
[재수] 속으로 고난한 때다. 차용은 소액이면 가능하다.
[증권·상품 시세] 분위기는 고가가 예상되지만, 차라리 안정가로 보인다.
이 글은 1976년 성균서관에서 출판된 남만성(南晩星)선생의 『주역周易』을 원문 그대로 옮겨놓은 글입니다. 오래된 책이라 이미 절판되었으나 그냥 묻혀버리기엔 아까운 콘텐츠여서 보다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이곳에 게재합니다. 재출간 가능성이 있을까싶어 저작권자와 출판권자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저작권자 등이 확인되거나 문제제기가 있을 경우 삭제 조치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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