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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글쓰기/남만성선생『주역』(+에세이,점사)

교착(交錯); 태평성대의 꿈, 지천태

by 로겨뷰 2024. 1. 26.

11. 地天泰 (지천태)

  地天泰괘는 <주역>64괘 중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보이는 길운의 괘라고 한다. 땅을 의미하는 곤괘가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밑에 있다. 하늘과 땅이 거꾸로 놓인 형상이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그야말로 천지가 뒤집힌 역현상, 끔찍이 불길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주역>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지 않다.

하늘이 아래로 내려오고 땅이 하늘 위로 올라가면 천지가 뒤집힌다는 생각은 하늘과 땅을 하나의 생명 없는 물질적인 존재로 보고, 우리의 육안에 보이는 형태의 구성에만 구애하고 있는 정적인 천지관에서 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형태의 천지가 거꾸로 매달리게 된다면 큰 이변이 아닐 수 없다. 천지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여기 <주역>이 설명하고 있는지천태의 논리는 그런 것은 아니다.

  <주역>은 하늘과 땅을 한 생명 있는 정신력의 주체적 존재로 보고 있다. 정신력의 주체인 하늘과 땅이 천지의 창조와 생성화육(生成化育)이라는 커다란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정신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 하는 천지의 마음을 능동적인 그들의 정신세계에서 설명하고 있다. 과연 하늘과 땅이 정신을 주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는 우리가 단정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가설 밑에서지천태의 논리는 전개되는 것이다. 사물의 현상을 물질적인 외관에서 설명하려 하지 않고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설정하여 논리하고 추리하는 것이 <주역>의 사고 방법이다.

  〈주역주역다운 맛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천태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늘은 하늘대로 높은 위치에서 스스로 높아하기만 하고 땅은 땅대로 제자리만 지키고 있어서 하늘은 하늘, 땅은 땅이라고 하는 상태로만 있다면 천지는 삭막한 한 개 빈 동굴적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기에 하늘의 마음은 땅으로 내려와 땅을 생각하는 마음이 되고, 땅의 정성은 하늘로 올라가 하늘을 돕는 정성이 되어서 서로 화합하기 때문에 그 협력으로 천지의 모든 경영이 원만하고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천지상교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하늘의 힘과 땅의 힘이 서로 교착한다는 뜻이다. 하늘의 작용이 땅에 미치고 땅의 작용이 하늘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하늘은 비를 내리게 하여 땅이 땅 위의 모든 생명을 낳을 수 있고 기를 수 있게 만들어 주며, 땅은 땅의 물을 다시 하늘로 올려보내 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어 하늘이 비를 빚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하늘과 땅 사이의 천태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천지자연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곧 인간의 일에 적용되는 것이다. 아니 인간의 일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의 법칙을 증언의 근거로 끌어들인 논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생각일 것이다. 천지상교의 논리를 인간에게는상하상교라는 말로 대치하고 있다. 즉 윗사람의 마음과 아랫사람의 마음이 서로 교착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한 군주국가에서 예를 든다면 위에 있는 임금의 마음은 항상 신하와 국민에게 머물러 있어야 하고, 신하와 국민의 정성은 항상 임금을 위하여 바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의 마음은 아래 내려와 있고 신하의 정성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괘상을 정신면에서 본뜬 인간의 지천태적 상태인 것이다.

  태는 크다 태평하다는 뜻이다. <주역>은 천지의 화합이 자연계의 모든 활동의 근원이듯이 인간의 가장 위대하고 이상적인 성취는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태평성대라는 말은 나라에 아무 불안도 위험도 또는 불평도 없이 안정하고 평화하여 국민이 마음 놓고 각자의 생업에 안도하고 각자의 생활을 향락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태평성대! 얼마나 마음 설레는 용어인가.

 

 내 힘으로 밭 갈아 밥을 먹고 목마르면 샘 파서 마시는 것을, 무슨 임금의 힘 내게 있다 하는고』

  (耕田而食하고 鑿井而飮하니 帝力이 何有於我哉리요)

 

  이것은 옛날 중국 순이라는 임금 시대에 나라가 하도 태평하여 국민이 도리어 그것이 누구의 덕택인지도 모르고 저의 평화하고 행복한 생활이 행복한 것인 줄도 모르고 제 생활을 노래 부르며 살았다는 옛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유가에서는。 이러한 세상을 태평성대의 대표적인 것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거니와, 정녕코 거기에는 불안도 불평도 없는, 평화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같이。 불안도 불평도 없고 자기의 생업에 안정하여, 평화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어찌 옛사람들의 동경에만 그칠 것인가 현대인에게도 꿈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태평성대에의 꿈을 포기한 적은 없다. 세상이 어지럽고 생활이 고되면 그럴수록 그 꿈은 더욱 절실하였을 것이다. <주역>이 춘추전국시대라는 전란의 시대로부터 은나라의 폭군 주왕의 치하인 주 문왕시대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니 태평성대를 상징하지천태를 상징한 <주역>의 말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도 소중한 인간의 최고의 이상이요, 최대의 경영인 태평성대를 성취하는 길이, ·하의 마음이 서로 사귀어지는 데 있다고 주역은 가르치고 있다. 마음이 엇바뀐다는 말은 서로의 위치를 바꿔서 남의 마음을 이해하라는 뜻이다. 옛말에 易地思之(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즉 남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므로 하여 그 남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고 노고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서로 맞닿을 수 있고 두 사람의 마음의 지향하는 곳이 하나인 것을 서로 알게 되면 그들의 마음은 하나로 뭉칠 수 있고 그들의 노력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집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임금과 신하와 국민 사이로 확대 전파되어 가면 한 나라의 마음은 하나로 화합되어 대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이 괘는 괘사와 효사를 통하여 거듭 강조하고 있다.

  「남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화합]시켜 한 나라와 국민을 이상의 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면 이 마음의 화합을 가지고 성취할 수 없는 인간의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로 집결한다는 것은 정녕코 위대한 힘을 지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전 뉴욕시민의 마음이 한순간에 한 점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들의 정신력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힘을 가진화합된 마음의 교훈을 지천태에서 배워 인간의 모든 집단생활에 선용할 줄 아는 현명을 가지자, 가정에서, 단체에서, 국가에서.

  이 모처럼 얻은 지천태괘는 <주역>64괘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대길 운을 계시하는 괘이다. 진정 이것이 당신의 실생활에 길운이 되어 구현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오직 당신의 정신력이 스스로 선택하기에 달린 것이다.  

 

 

이 글은 1976년 성균서관에서 출판된 남만성(南晩星)선생의 주역周易』을 원문 그대로 옮겨놓은 글입니다. 오래된 책이라 이미 절판되었으나 그냥 묻혀버리기엔 아까운 콘텐츠여서 보다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이곳에 게재합니다.
재출간 가능성이 있을까싶어 저작권자와 출판권자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저작권자 등이 확인되거나 문제제기가 있을 경우 삭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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