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풍천소축
당장에 한줄기 퍼부을 것처럼 비를 밴 검정 구름이 나지막이 내리덮고 있건만 좀처럼 비는 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어둡고 후텁지근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처럼 가슴 답답한 노릇은 없다.
「어서 좀 쏟아졌으면!」
이렇게 정체와 기다림의 순간에 놓인 상태가 이 풍천소축괘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정체와 기다림의 상태는 멀지 않아 전진과 성취의 감격을 가져다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소축이라 함은 조금씩 저축한다, 조금 동안 막아 둔다, 조금씩 기른다는 뜻이다. 이제 검은 구름 속에는 비를 저축하면서 잠깐 땅 위로 내려가는 것을 막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비는 자꾸 큰비로 길러져 가고 있다. 머지않아 큰비는 내리고야 말 것이다. 기다리는 숨 막히는 순간 저 너머로 쏴! 하고 쏟아지는 비를 보는 것은 진실로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철학자 임어당은 그의 수필집 <유한수필> 속에, 십칠 세기의 위대한 인상주의적 비평가였던 중국의 한 학자가 추려낸 것이라고 하면서 인생의 서른세 가지의 행복(혹은 통쾌한 일)을 열거하고 있다. 그 서른세 가지의 첫머리에 이런 것이 있다.
「하늘에 칠월의 태양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한줄기의 바람도 한 조각의 구름도 없다. 뜰은 화로 속처럼 뜨겁다. 어디에서 지치고 있는지 새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땀은 냇물처럼 전신을 흐르고 있다. 점심상을 받았으나 수저를 들기가 싫다. 봉당에 돗자리를 펴게 하고 누워 보았으나 돗자리는 금방 땀에 젖어 버린다. 파리 떼가 모여들어 쫓아도 가지 않는다. 아주 완벽히 지쳐 버리고 있는 판에 별안간에 우르르 천둥이 울고 거대한 검정 구름이 공중에 일어나 전선으로 나가는 큰 군대의 행렬처럼 엄숙하게 다가온다. 보고 있는 사이에 빗물은 폭포인 양 처마를 흘러내리고 있다. 땀은 멎고 더위는 사라지고 그리곤 파리 떼는 흩어져 버렸다. 나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과연 가슴이 후련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통쾌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 검정 구름이라면, 이 풍천소축괘는 바로 검정 구름 그것인 것이다.
풍천소축괘는 바람을 상징하는 손 괘가 위에 있고 하늘을 의미하는 건괘가 밑에 있다. 하늘에 바람이 불고 있는 모습이다. 바람은 구름을 몰아 오고 비를 부르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기에 고시에「山雨欲來 風滿樓산우욕래 풍만루」라는 멋진 글이 있다. 금방 뿌연 빗줄기가 쏴 하고 소리치며 산을 넘어 달려들 것 같은 그런 때면 산중에 있는 정자 마루에는 먼저 온통 바람으로 가득 찬다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한편 바람은 비의 첨병이란 것을 말하여 주는 글이기도 하다.
이같이 바람은 비의 첨병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 힘이 미약할 때는 당장에 비를 부르지는 못한다. 소축은 조금씩의 저축이다. 그 조그마한 저축으로는 지금 당장 서둘러 보아도 비가 될 수는 없다. 큰 힘이 저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천지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사람도 자기의 올바른 생각이 아직 실천에 옮겨질 만한 힘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는 초조하거나 저돌의 만용을 부리거나 실망하지 말고 착실하게 차근차근 실력을 기르라는 것이 이 괘의 교훈인 것이다.
이 괘는 그 형태에 있어서 모든 양효 속에 다만 하나의 음효가 섞여 있다. 그야말로「萬綠叢中一點紅만록총중일점홍」의 존재이다. 온통 푸른 빛으로 뒤덮인 수풀 속에 붉은 꽃 한 송이와 같은 것이다. 그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이 숲 전체를 조화시키기에는 미약한 것이다. 모든 양효의 강강일색의 지나친 행세를 오직 하나의 음효가 그 부드러움으로써 견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 괘는 소가 대를 견제하고 아내가 남편을 견제하는 형상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 견제하는 수단은 부드럽고 성의 있고 예의를 잃지 않는 것이라야 된다. 내 마음의 정성으로 남의 마음의 벽을 뚫어야 한다. 그것이 정당한 수단인 것이다.
십육 세기 무렵 기독교의 한 교파는「목적은 수단을 신성하게 한다.」라고 주장한 일이 있다. 즉 바른 목적을 위하여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옳지 못한 수단일지라도 그 목적이 신성한 것이면 그 수단은 신성한 것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주장이 아니었다. <주역>에서는 정의의 목적을 위한 일일수록 그 수단은 정당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지금 그대의 힘은 아직 약하다. 여건의 성숙을 기다려야 한다.
모든 이 괘를 얻은 이는 이 괘의 가르침을 각자의 경우에 추리하여 맞추어 가질 것이다. 사업가일 경우도 있고 샐러리맨일 경우도 있고 가정주부일 경우도 있고 정치가인 경우도 있고 학생일 경우도 있다. 그 하는 일, 마음먹은 일이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서라도 바른 마음으로, 한결같은 노력으로 자신의 실력을 기르면서, 성의와 유순으로 남에게 대하면 멀지 않아 길운이 열릴 것이다.
당신이 이 괘를 파탄의 암시로 만들든지, 성공의 전제로 선용하는지 그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신의 정신은 이것을 선택할 현명을 가졌으며 당신은 당신 자신의 정신을 통제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괘풀이
풍천소축괘는 조금 막아 둔다, 조금씩 저축한다, 기른다는 뜻이다. 마치 구름이 비를 배태하고 있으나 아직 비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잠깐 막혀 있는 운세, 지금은 아직 당신은 만사가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무엇인가 펴일 듯하다가는 장애가 생기고 될 듯하다가는 틀어지곤 한다. 사업이나 계획이 뜻과 같지 않다. 앞으로 삼 개월만 참으라.
물질은 풍족한 운세. 부부생활은 권태기에 있다. 부부싸움은 금물, 모든 일은 아내에게 내맡겨 놓고 있는 상태. 내 주장의 경향이 있다.
운수 - 부부관계가 순조롭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운수에 영향 주고 있다. 미혼인 경우는 직장 같은 곳의 팀워크가 혼란해진 것을 의미하며, 또 당신의 친구와의 관계가 나빠진다.
소망 - 방해가 생기기 쉽다.
결혼 –두 번, 세 번 교섭이 있고 난 뒤에 성립한다.
임신‧출산 - 유산할 우려가 있다.
건강 -병은 나았다가 더하다가 오래 끌 징조가 보인다. 신경계통의 병, 신경통에 조심하라.
교섭·분쟁 - 조금 정체된다. 그렇다고 조급증을 부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여행 - 중지하는 것이 좋다.
잃어버린 물건 - 찾지 못한다.
대인・음신(사람을 기다리거나/소식이나 편지를 기다림) - 처소가 자주 바뀌어서 제때 되지 않는다.
재수 - 잔돈에는 재수가 좋다.
증권・상품 시세 - 보합.
이 글은 1976년 성균서관에서 출판된 남만성(南晩星)선생의 『주역周易』을 원문 그대로 옮겨놓은 글입니다. 오래된 책이라 이미 절판되었으나 그냥 묻혀버리기엔 아까운 콘텐츠여서 보다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이곳에 게재합니다. 재출간 가능성이 있을까싶어 저작권자와 출판권자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저작권자 등이 확인되거나 문제제기가 있을 경우 삭제 조치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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