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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논 이야기

by 두마리 4 2025. 2. 18.

상속 받은 논 한 뙈기를 팔았다. 기분이 묘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던 논이다. 객지로 나온 뒤 30여 년 간 거의 볼 일이 없었다. 논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정작 팔고 나니 그 논에 대한 기억이 샘솟는다. 늘 가까이 곁에 있을 땐 아무 생각 없다가 떠나고 나면 생각나는 사람처럼.

 

논 옆에는 집안 조상의 묘가 있었다. 제법 넓은 묘역은 모내기나 타작 등 논 농사 일을 할 때는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점심이나 새참을 먹는 장소였다. 쟁기질과 쓰레질을 하시던 아버지 모습, 새참이나 점심을 해서 머리에 이고 논둑길을 오시던 어머니, 줄 맞춰 모내기를 하던 동네 아지매들 모습, 소 먹일 꼴을 베거나 모춤을 논바닥으로 던져 넣던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늦가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면서 들판 묘지에서 묘사를 지내는 모습이 보이면 논둑길을 앞다투어 달려가서 떡과 마른 문어와 오징어 등를 얻어 먹던 기억도 삼삼하다.

 

동네 청년들이 하나둘 도시로 떠나면서 골짜기에 있는 다랑이 논들은 묵어서 산이 되었다. 그나마 접근 괜찮은 논들은 합배미를 쳐서 더 커지고 좀 반듯해지고 논두렁은 높아졌다. 이제 산골에서 트렉터가 들어갈 수 있는 토지만 경작하게 되었다.

 

법무사에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수수료는 매수인만 내고 매도인은 내지 않는다. 어릴 때 논을 사면 온 동네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잔치를 하던 생각이 났다. 대체로 살림이 쪼들리니까 땅을 파는 것이고, 돈을 벌었으니까 땅을 산다는 관습 때문에 매수인만 수수료를 내는 것일까.

 

논을 팔고 나니, 그 논바닥에 수십 년 동안 스미고 배어들었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공백 포함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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