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둘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소유를 벗어나서 생존할 수 없다. 소유나 존재는 모두 생존 양식이다. 소유와 존재는 다른 종류의 대칭적인 지향형이다. 어느 쪽이 지배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사고, 감정 행위의 총체가 결정되는 성격 구조이다.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에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것과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그릇, 옷, 연필, 휴대폰, 자동차 등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생각, 사상, 사랑 등은 구체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소유할 대상은 아니다. 서구의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현대 문명은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대상에서 출발하여 소유의 대상을 점점 넓혀 왔다. 물과 공기, 우주의 행성까지 소유하려고 욕망한다. 또 지적 재산권 등 배타적 소유권의 범위를 점점 넓히고 있으며, 가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에도 ‘갖는다’는 말로 표현하여 소유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일상 경험에 있어서의 소유와 존재 챕터가 재미있다. 소유 양식의 학습은 배운 것을 고수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존재 양식의 학습은 짐작하고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새로운 의문, 새로운 관념, 새로운 전망을 만들며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
소유 양식으로서의 기억은 기계적, 논리적이다. 사진이나 메모는 소유 양식의 기억이며 기억이 소외된다. 기억하기 위해 적어 놓는 행위가 기억 능력을 감퇴시킨다. 이에 비해 존재 양식의 기억은 능동적, 생산적이며 다른 개념과 관계를 맺는다.
소유 양식의 대화는 자기 의견을 지키기 위해 보다 나은, 즉 합리적인 논지를 찾아낸다. 이에 비해 존재 양식의 대화는 무장하지 않은 채 사태에 임하며 자발적이고 생산적으로 반응한다. 소유 양식의 독서는 스토리, 지식, 사상을 소유하고 암송하려고 한다. 이에 비해 존재 양식의 독서는 내적 참여와 더불어 생산적으로 읽는다.
소유 양식의 권위는 사회적 지위에 의한 권위이다. 권위의 형식적인 상징인 제복, 칭호, 자동차, 사무 공간 등에 집착한다. 이에 비해 존재 양식의 권위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권위를 위한 협박이나 매수가 필요없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등 인생의 교사가 가지는 권위이다. 권위를 위한 포장이 필요없다.
소유 양식의 지식은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손에 넣어 그것을 지키고 유지한다. 존재 양식에 있어서 최적의 지식은 ‘더 깊이 아는 것’이다. 그것은 환상에서 깨어나는 인식이다. 꿰뚫고 비판적이고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것, 성적 관통을 뜻하는 ‘야다(yada)’처럼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소유 양식이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감금하고 지배한다. 약혼은 파트너 각자에게 상대방의 육체, 감정, 관심의 독점적 소유를 인정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과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서로 사랑하는 대신에 돈, 사회적 지위, 가정, 자식의 공동 소유로 만족한다.
존재 양식은 소유 양식에 대한 반성이다. 과학 문명에 대한 반성이다. 존재 양식은 무소위, 무위 자연, 공(空)과 상통한다. 존재 양식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고정된 실체가 없고 변화의 과정에 있으며 소유의 주체도 객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공백 포함 1,689자)
별별챌린지 8기 2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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