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해서 고향에 돌아가 살고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가 말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노?”
내가 말했다.
“특별히 좋은 일도 없고 특별히 나쁜 일도 없다. 니는 어떻노?”
친구가 말했다.
“나는 살맛이 안 난다.”
내가 말했다.
“그러면 맛 안 나는 고기 먹지 말고 채소 먹어라.”
살맛은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나 의욕이다. 살맛은 죽을 맛과 붙어있다. 사실 죽을 맛이라고 해도 진짜 죽고 싶거나 죽을 정도의 고통일 때 쓰는 말은 아니다. 살맛 나는 인생을 위해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거나 그 고생을 이겨내면 살맛나는 상황이 올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주로 쓴다.
목 마를 때 물을 마시면 살맛 난다. 굶주리다 배 부르게 음식을 먹으면 살맛 난다. 땀 흘려 일한 뒤에, 또는 힘든 등산 끝에 막걸리 한 사발이나 맥주 한 잔을 마실 때 살맛 난다. 변비로 며칠 간 고생하다 시원하게 배설해버렸을 때 살맛 난다. 살맛은 먹고 배설하는 것과 붙어 있다. 생존의 기본 욕구가 문제 없이 충족될 때 살맛 난다.
살맛, 죽을맛을 사전에 찾아보았다. ‘죽을맛’이란 단어는 없다. ‘살맛’은 두 개나 있다. 앞의 살맛은 살아갈 맛이고, 다른 살맛은 살갗의 느낌이다. 이 살맛의 첫 번째 뜻은 ‘남의 살과 서로 맞닿았을 때 느끼는 느낌’이다. 예문으로 ‘살맛이 부드럽다’를 들고 있다. 두 번째 뜻은 ‘성행위에서 상대편의 육체로부터 느껴지는 쾌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오상원의 『백지의 기록』에 나오는 문장을 예로 들고 있다. ‘여인과의 포옹이 그의 정욕을 격화시켰을 때 그는 이미 감각의 첨단까지 속속들이 알아 버린 여자의 살맛을 그대로 놓쳐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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