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한양대 최우수 교양과목으로 선정된 ‘문화혼융의 시 읽기’ 강의 내용을 추려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 평론에 가까운 내용도 있지만, 대체로 교양을 쌓기에 적절한 수준이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편의 시를 관련지어 설명한다. 여기에 일상적인 사건, 유행가, 가곡, 그림, 소설, 영화, 광고 등을 연관지어 설명한다. 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작가의 일화나 문단의 이야기도 곁들여 흥미가 있다.
비교적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들이 많이 나온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이형기의 ‘낙화’, 김춘수의 ‘꽃’,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기형도의 ‘엄마 걱정’, 서정주의 ‘신부’,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소월의 ‘부모’, 유치환의 ‘행복’, 천상병의 ‘귀천’, 김수영의 ‘폭포’ 등은 익숙하지 않은가.
시 한 두 편을 두고 다소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와 다른 맛이 있다. 해설이나 분석 없이 또다른 한 편의 시같은 감상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을 덧붙이는 김용택의 『시가 내게로 왔다』와도 다른 맛이다. 시를 잊고 사는 사람들한테 시에 대한 흥미를 돋우어 줄만하다.
신경림의 ‘아버지의 그늘’이라는 시 중에 한 구절이 걸렸다.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SG워너비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란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이곳 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아버지는 쉰넷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되어서야 아버지는 나보다 100배는 훌륭한 분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형편없는 아들이었음을 알아차리고 후회한다. 또 한편으론 감사하며 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시 중에 마음을 찡하게 만든 시가 있다. 김춘수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쓴 ‘바람’이라는 시다.
자목련이 흔들린다.
바람이 왔나 보다.
바람이 왔기에
자목련이 흔들리는가 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
자목련까지는 길이 너무 멀어
이제 막 왔나 보다.
저렇게 흔드는 저것이
바람이구나.
왠지 자목련은
조금 울상이 된다.
비죽비죽 입술을 비죽인다.
(34) 김진호 - 가족사진 [불후의 명곡2].20140524 - YouTube
'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 > 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료 비즈니스 (2) | 2023.12.19 |
---|---|
불길에야 녹을 눈 (0) | 2023.12.18 |
아름다운 이별 (2) | 2023.11.25 |
스스로 그러함 (0) | 2023.11.15 |
상대적 불안감 (1) | 2023.1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