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설3

잡초의 역설(逆說) 잡초는 올라오자마자 뽑아버린다 잡초는 보이는대로 뽑아낸다 잡초는 너무 커서 뽑지 못하면 낫으로 베어 버린다 그래도 어느 틈엔가 또 잡초는 자란다 자리잡고 커져버린 바랭이는 뿌리가 너무 튼튼하다 바랭이, 왕바랭이, 민바랭이, 좀바랭이, 잔디바랭이 잡초 중의 잡초, 잡초의 여왕 마디마다 뿌리박고 억세게 버틴다 씨름하듯 온몸의 힘을 다 써도 뽑히지 않는다 어쩌다 뽑아올리면 뿌리가 안고 있는 흙덩이가 한 아름이다 뽑히고 잘리다 보니 억세고 강해졌을까 키우고자 하는 작물은 잘 뽑힌다 안 뽑으려고 조심하는데도 어느 뽑혀져 있다 상추도 잘 뽑힌다 오이도 잘 뽑힌다 감자도 잘 뽑힌다 그나마 고구마가 좀 버티나 옥수수가 조금 힘이 있나 그래도 바랭이와 비교하면 약하기 그지 없다 너무 애지중지 보살펴 키우려고 해서 약해졌을까 2023. 8. 31.
발갛게 콩닥거리는 눈길 이웃집 꼬맹이가 대추 서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 꼬맹이를 쫓는구나 꼬맹이는 되돌아서 노인에게 소리친다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지도 못할걸요” 이달(李達)이 쓴 박조요(撲棗謠), 대추 따는 노래다. 자연스럽고 평이하다. 심오한 내용도 없고, 뛰어난 수사(修辭)도 없다. 그런데도 시를 읽으면 편안하고 재미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주제를 생각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이런 시야말로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은 시가 아닌가.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은 시가 아닐까. 영양은 잠을 잘 때 외적의 해를 피하기 위해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허공에 매달려 잔다고 한다. 시에서 말은 영양이 땅 위를 걸을 때 생기는 발자국이다. 시의 의미는 뿔을 걸고 허공에 매달린 영양처럼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2023. 7. 30.
그래, 역설! [그래, 역설!] 시(詩)는 말장난을 낳고 말장난은 시(詩)를 낳는다 산꼭대기는 산골짜기를 낳고 산골짜기는 산꼭대기를 낳는다 긴 것은 짧은 것을 낳고 짧은 것은 긴 것을 낳는다 강건함은 유연함을 낳고 유연함은 강건함을 낳는다 아름다움은 추함을 낳고 추함은 아름다움을 낳는다 쉬움은 어려움을 낳고 어려움은 쉬움을 낳는다 두꺼움은 얇음을 낳고 얇음은 두꺼움을 낳는다 영광은 굴욕을 낳고 굴욕은 영광을 낳는다 밝음은 어둠을 낳고 어둠은 밝음을 낳는다 있음은 없음을 낳고 없음은 있음을 낳는다 무늬는 얼룩을 낳고 얼룩은 무늬를 낳는다 젊음은 늙음을 낳고 늙음은 젊음을 낳는다 넓음은 좁음을 낳고 좁음은 넓음을 낳는다 부자는 빈자를 낳고 빈자는 부자를 낳는다 높음은 낮음을 낳고 낮음은 높음을 낳는다 채움은 비움을 낳고 .. 2023.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