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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문명적’ 성도덕과 현대인의 신경병

by 두마리 4 2023. 4. 11.

‘문명적’ 성도덕과 현대인의 신경병

 

1908년에 프로이트가 발표한 문명적 성도덕과 현대인의 신경병이라는 논문을 읽고 있다. 이 논문의 요지는 현대 신경병의 원인이 문명적 성도덕에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문명적 성도덕의 개념을 폰 에렌펠스의 주장으로부터 가져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문명적 성도덕은 인간으로 하여금 강력하고 창조적인 문화 활동에 종사하도록 자극을 가하는 성도덕이다. 그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자연적 성도덕이란 말을 쓰고 있다. 문명적 성도덕의 특징은 남자들의 성생활에 맞춰 여자들에게 요구가 가해지고, 일부일처제의 혼인 관계를 떠난 성교는 모두 금지된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해 먼저 다른 학자의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에르프의 논문을 근거로 현대 생활에서 신경병의 원인이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에르프에 따르면, 현대의 놀라운 성취, 발견과 발명은 엄청난 정신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개개인의 욕망과 요구도 늘어나는데 충족이 안 된다. 이에 따라 생기는 사치ㆍ서두름ㆍ흥분ㆍ불안ㆍ복잡ㆍ관능 자극ㆍ도덕적 원칙과 이상에 대한 경멸ㆍ정신병적인 성행위 등이 신경병의 원인이 된다.

 

빈스방거는 현대인은 돈과 재물을 끝없이 추구하고, 과학 기술의 진보가 시간ㆍ공간적 장벽을 없애는데, 이런 점이 신경을 쇠약하게 한다고 말한다.

 

폰 크라프트-에빙은 지난 수십 년 동안에 직업과 사회적 지위 및 재산에 일어난 변화가 신경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데 이를 회복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들의 견해가 신경 장애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요인을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문명은 본능 억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문명 사회에서는 성 본능을 억제하고 금욕을 강요한다. 이러한 성적 요인이 신경증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문명은 성생활의 기준을 정해놓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행실을 요구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결혼할 때까지는 금욕을 요구하고 합법적 혼인을 맺지 않은 사람은 평생 금욕해야 한다. 결혼한 부부조차 아이를 가지기 위한 몇 차례의 성교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러한 성 본능 억제와 금욕의 결과 부부 관계에서 만족스러운 성교가 이루어지는 것은 결혼 초기 몇 년에 불과하고 나중에는 애정이 식고, 정신적 조화까지 깨지며, 정신적 환멸과 육체적 불만을 갖게 경우가 많다. 남자는 충분한 성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여자는 불감증에 걸리게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성 본능을 억제하면서도 신경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으로 승화가 있다. ‘승화는 성적 대상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테면 학자의 경우 금욕을 통해 모든 정력을 학문 연구에 쏟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 해방론자, 개혁가, 독창적인 사상가 들에 있어서 금욕은 부정적이다. 금욕은 행실은 바르지만 의지가 약한 사람, 강력한 지시를 마지못해 따르는 사람, 군중 속에 파묻혀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는 사람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프로이트는 자위를 통한 성적 욕구 해결에도 부정적이다. 자위는 탐닉을 통해 도덕적 품성을 타락시키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온 힘을 쏟기보다는 손쉽게 이루는 법을 가르치고, 환상 속에서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인물을 성적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신경증에 걸린 아내는 사랑의 욕구를 자식에게 옮겨 자식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걱정하게 된다. 또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것만이 그녀가 배운 결혼의 이상에 부합하기 때문에, 남편을 몹시 사랑하고 싶은 여자가 되어 진실 표현의 충동을 억제하며 남편을 사랑하는 다정하고 상냥한 아내 역할의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점이 신경증을 유발한다.

 

20세기 초에 발표된 논문인데,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 부합하는 면이 많다는 게 놀랍다. 물론 우리나라도 젊은 세대의 경우 성에 대한 의식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은 성적 행동을 되도록 늦추고, 결혼할 상대가 아닌 사람과의 성관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합법적인 부부 관계가 아닌 사람과의 성적 행동은 불륜이고 억제 대상이다.

 

문명적 성도덕이 신경병을 유발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자연적 성도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연적 성도덕은 인간 아닌 동물에 가깝다. 암컷과 수컷의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성행동을 용인할 수 있을까. 생식 능력에 따른 자연적 도태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왜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는 성 본능을 억제하고 금욕을 강요할까. 문명이 본능 억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면 성 본능 억제도 다른 본능의 억제의 목적과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문명 사회에 사는 한, 동물이 생존 본능에 따라 하듯이 공격하거나 보복하지 못한다. 그러한 행동은 인간 문명이 만들어낸 예절ㆍ도덕ㆍ 법ㆍ규칙 등이 억제하고 금지시킨다. 성 본능을 억제하고 금욕을 강요하는 문화와 제도 등은 모두 공동체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관계가 있다. 지배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억제되지 않는 성 본능은 다른 본능과 마찬가지로 문란(紊亂)’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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