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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

by 두마리 4 2025. 2. 19.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있다.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고 창경원의 대온실은 1909년에 개관했다. 6.25 전쟁으로 창경원은 폐원했고, 폭격으로 인해 일부 훼손됐다. 정부에서는 대온실을 1951, 1961, 1976년 총 3번에 걸쳐 수리했다. 소설은 대온실의 수리 과정을 다루면서 이면적으로는 사람들의 심리를 발굴하여 파헤쳐보고 치유하는 면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러 개의 이야기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주인공을 둘러싼 석모도 사람들 이야기, 낙원하숙 사람들 이야기, 건축사무소 사람들 이야기, 창경궁 대온실 공사 책임자였던 후쿠다 노보루 이야기가 시대 문화와 역사적 사실 등의 세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풍부하고 다양하게 전개된다.

 

인물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재미있다. 건축회사 은세창 대리의 작도’, 건축 디자이너 제갈도희의 제도’, 주인공 강영두의 강도라는 별명 짓기가 재미있다. 제갈도희의 성격을 곤줄박이의 속성에 빗대어 표현한다. 장과장은 어치같이 경계심 많고 자기 영역에 대한 통제력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삼우씨는 두려움과 공포하는 거대한 힘에 경도되어 아이들 손에 잡혀 파닥거리는 개구리처럼 목적성 없어보이는 흥분과 열의만 있다고 말한다. 리사는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에서처럼 무법자가 달려들 듯한 공격적인 우울함을 가졌다고 비유한다.

 

소설 끝에 참고자료 목록이 무려 단행본, 논문, 언론 기사 등 89편이나 된다. 마치 보고서를 써듯이 역사적 사실과 관련 정보를 고증했음을 알 수 있다. 세살문, 만살문, 완자문, 아자문 등의 한옥의 창살문, 어도, 낙선재, 누마루, 클리어스토리, 캣워크, 큐가든, 야앵, 춘당지, 월근문 등 건축, 온실, 역사와 관련된 새로운 지식을 얻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쟁 수탈기의 동물 살해 내용도 인상적이다. 얼마 전 <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이라는 책 소개를 라디오에서 들었다. 영국에서 선전 포고 만으로 4일만에 개와 고양이 40만 마리가 살해됐고, 일주일 만에 75만 마리 살해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애완견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실제 전쟁이 전쟁이 난나면 애완견은 어떻게 될까. 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있는 거저 생명만 유지하는 환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상상을 하게 만든다.

 

삶에 대한 처세나 달관을 표현하는 구절들이 인상적이다. “누가 들으면 쓸모없게 느껴지는 얘기를 하면서 핵심을 적당히 피해가는 데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그렇게 눈앞에 놓은 너무 어렵고 슬픈 문제는 에두르고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걱정을 했다.” “장마가 그런데 어쩔 것이야. 다음을 기다려보야지. 그런다고 바다 소금이 어디 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말이야, 영두야. 꼭 차 다니는 도로 같은 거라서 언젠가는 유턴이 나오게 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중천건의 잠룡, 현룡, 척룡, 약룡, 비룡, 항룡의 단계가 생각난다. 깎여나가는 산지박이 끝나면 다시 회복하는 지뢰복이 시작된다.

 

(공백 포함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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