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올 겨울 들어 처음이다. 올해 유난히 늦게까지도 풀이 죽지 않던 풀들도 12월 말이 되어서야 시들어 마르는 모습이었다.
‘풀’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수영장을 뜻하는 풀(pool)을 제외하면 3개다. 하나는 쌀이나 밀가루 따위의 전분질에서 빼낸 끈끈한 물질을 뜻하는 풀이다. 이는 주로 무엇을 붙이거나 피륙 따위를 빳빳하게 만드는 데 쓴다. 풀의 빳빳한 기운이나 차진 기운은 ‘풀기’라고 한다. 또 빳빳해지는 것을 ‘풀이 서다’라고 하며, 빳빳하지 아니하게 되는 것을 ‘풀이 죽다’라고 한다.
다음은 초본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풀’이다. 목질이 아니어 줄기가 연하고, 대개 한 해를 지내고 죽는다. 대를 두고 풀도 나무도 아닌 것이라고 한 시조 구절이 있다. ‘대’를 찾아보니 볏과의 대나무속 식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볏과로 분류한 것을 보니 풀의 속성인데, ‘대나무속’이라니.
세 번째, 세찬 기세나 활발한 기운을 뜻하는 ‘풀’이 있다. 몹시 날쌔고 기운차게 자꾸 뛰거나 나는 모양은 ‘풀풀’이라고 한다.
세 가지 ‘풀’은 어원이 같은 게 아닐까. 싱싱한 풀은 풀을 먹여 놓은 것처럼 세찬 기세나 활발한 기운의 풀기가 있다. 살아있는 풀에서는 푸른 생기를 느낀다. 생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어물전(魚物廛)에서 생선(生鮮)의 생기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수시로 물을 뿌린다. 물기는 윤기를 낸다.
산화비괘(山火賁卦䷕)는 꾸밈이다. 산불만큼 큰 꾸밈이 있을까. 비괘의 3효사는 ‘꾸미는 것이 윤택하니, 오래도록 유지하고 올바름을 지키면 길함[賁如濡如 永貞吉]’이다. ‘유(濡)’는 젖음이다. 윤택(潤澤)은 근원은 젖음이다. 젖음은 수분(水分)이다. 봄이 되어 물이 오르는 식물은 생기가 넘친다. 수분을 제대로 유지하면 사람이나 물건이나 윤택하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
(공백 포함 896자)
별별챌린지 8기 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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