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가을 모과나무 아래 떨어진 모과를 두 개 주워왔다. 거실에 두고 진하지 않은 향과 노오란 빛깔을
어쩌다 즐겼다. 어쩌다 한 번 쳐다보았다. 어쩌다 한 번 집어서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크고 잘생긴 하나가
먼저 썩었다. 주워왔던 그곳에 내다 버렸다.
오늘, 하나 남은 모과에 무심히 눈이 갔다. 이리 저리 돌려가며 보았다. 눕혀도 보았다. 위에서도 보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였다. 작은 물개처럼 보였다. 작고 통통한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한 무더기 똥
처럼 보였다. 다 썩어가는 모과일 뿐인데 보기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
다 썩어가는 모과를 물개라고 우겨볼까. 다 썩어가는 모과를 노란점박이 새라고 우겨볼까. 다 썩어가는 모과를 한 무더기 똥이라고 우겨볼까. 다 썩어가는 모과를 다 썩어가는 모과라고 굳이 말해 볼까.
느닷없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환관 조고의 말이 떠오른다. 조고는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조고는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사슴은 말이라고 맞장구친다. 살기 위해 맞장구친다. 더 잘 살아보려고 맞장구친다. 실제 사슴은 말이기도 하다는 강한 신념으로 맞장구친다. 사슴이 말이라는 허구를 바탕으로 살아움직이는 현실이 만들어진다. 다 썩어가는 모과가 사슴이 된다. 사슴이 이리저리 날뛰는 말이 된다.
(공백 포함 663자)
2025.1.8. 별별챌린지 8기 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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