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사랑할 때 서로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 사랑의 싹수가 노란 것을 일찌감치 발견하여 헤어지기도 한다. 그때 그 사랑은 변했지만 더 중요한 가치나 이해타산(利害打算)을 따져 결혼하기도 한다. 대개는 그 사랑이 식어서 변할까봐 서둘러 결혼한다. 그리고는 구멍난 사랑을 메우기 위해, 멀어진 두 사람 사이에 놓을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 아이를 생산하여 기른다. 아이 핑계 대고 이혼을 미루고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 그러다가 어느새 매력 없는 중고차가 되어 이혼을 포기하고 주저앉는다.
택산함괘(澤山咸卦䷞)를 말아서 뒤집으면 뇌풍항괘(雷風恒卦䷟)가 된다. 함괘가 젊은 남녀가 교합(交合)하는 것을 상징한다면, 항괘는 좀더 성숙해진 부부의 괘다. 함괘에서는 소녀인 태택괘(兌澤卦☱)가 위에 있고 소남인 간산괘(艮山卦☶)가 아래에 있었다. 항괘에서는 장남인 진뢰(震雷☳)가 위에 있고 장녀인 손풍(巽風☴)이 아래에 있다.
남녀가 연애를 하고 교합(交合)을 할 때는 남자가 여자를 상위(上位)에 있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순리(順理)에 맞는 듯하다. 하지만 뇌풍항괘(雷風恒卦䷟)는 부부가 되고 난 다음에는 남자가 위에 있고 바깥에 있으면서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여자는 아래에 있으며 집안일을 하면서 공손한 태도를 가져야 부부의 항상성이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진뢰(震雷☳)는 ‘움직임’, 손풍(巽風☴)은 ‘공손함’을 상징한다.
뇌풍항(雷風恒䷟)의 ‘항(恒)’은 ‘늘’, ‘상(常)’, ‘항상(恒常)’이다. 부부가 된 다음에 중요한 것은 ‘항상성’이다. 결혼식 때 옛날에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변치 않고 서로 사랑할 것을 서약했다. 요즘도 여러 사람들 앞에 또는 하나님 앞에 신랑은 신부만, 신부는 신랑만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사람들 앞에서 서약을 하는 것은 결혼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부부 간의 항상성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부부 간에 항상성이 유지가 되지 않으면 종족 보존과 공동체의 기초 단위인 가족이 유지되기 않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존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흔히 변치 말고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 ‘변함’이 문제다. ‘항상(恒常)’은 변함 없음을 뜻하는가. 밤낮이 바뀌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바뀐다. 그 과정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늘 변하지만 밤낮이나 사계절이 반복되는 그 질서는 지속된다. 우레와 바람도 똑같지는 않지만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부는 현상은 항상 지속된다. 변해야 통하고 통해야 오래 간다. 변치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도 변해야 통하고 통해야 오래 간다. 사람도 다른 생명체와 같이 끊임없이 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변화를 겪는다. 그렇게 나고 죽는 변화를 해야 통한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통(通)하겠는가. 오래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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