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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치유와 수련의 필사(筆寫)

『장자』 전문 읽기-소요유(逍遙遊)편(2)...쓸모

by 두마리 4 2025. 5. 30.

()가 천하를 허유에게 양도하면서 말했다.

 

해와 달이 떠 있는데 횃불을 계속 밝히고 있으면 그 횃불의 빛을 나타내기란 또한 어렵지 않소? 제 때에 알맞은 비가 왔는데 오히려 인력으로 물을 댄다면 오히려 그 적시어 주는 것이 오히려 헛수고가 아니겠소? 그대가 서야 천하가 잘 다스려질 텐데 내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으니 내 자신이 볼 때 부끄럽소. 그러니 청컨대 맡아 주시오.”

 

허유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천하를 다스렸으므로 천하는 이미 잘 다스려지고 있소. 그런데 내가 그대를 대신한다면 나는 장차 명예를 위하라는 말이요? 명예는 실질의 빈객(賓客)인데 나를 빈객이 되라는 말이요. 뱁새가 깊은 숲에 깃들어도 한 개의 나뭇가지에 의지할 뿐이고, 두더지가 강물을 마셔도 그 배를 채우는 데 불과하오. 그러니 당신은 돌아가시오. 나는 천하가 쓸 데가 없소. 요리사가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한다 해서 신주(神主)가 술단지와 도마를 뛰어넘어 가서 대신 음식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오.”

 

견오1)가 연숙2)에게 물었다.

내가 접여3)의 말을 들으니 그 말이 너무 커서 타당성이 없고, 가기만 했지 돌아올 줄 모르데 나는 그 말에 놀라 두려워했네. 마치 하한4)처럼 끝이 없데. 너무나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나서 사람의 정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데

 

연숙이 물었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이에 견오가 이렇게 대답했다.

묘고야산5)에 신인(神人)이 사는데 살결이 얼음이나 눈 같고 자태가 처녀 같으며 오곡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나는 용을 몰며 사해(四海) 밖을 노닐고 있다고 하네. 그가 정신을 집중하면 만물이 병들지 않고 곡식 풍년이 든다네. 나는 그 말이 하도 허황되어서 믿을 수가 없네.”

 

연숙이 말했다.

그럴 것일세. 장님에게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일 필요가 없고 귀머거리에게는 음악 소리가 필요 없는 법이네. 어찌 육체적으로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겠는가? 정신면에서도 그런 것은 있으니, 이 말은 바로 자네를 두고 하는 말일세. 그 사람, 그의 덕은 만물을 혼연일체(渾然一體)로 통일하는 힘을 가지고 있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천하를 다스려 달라고 해도 누가 허덕이며 천하의 일로 관심사를 삼겠는가? 그 사람은 아무 것으로도 해칠 수가 없네. 홍수가 나서 하늘까지 닿아도 그는 빠지지 않을 것이고, 큰 가뭄에 쇠나 돌이 녹아 흐르고 흙이나 산이 타더라도 그는 뜨거워하지 않을 것일세. 이렇게 그는 먼지와 때, 쭉정이와 겨를 가지고도 요()ㆍ순() 같은 자를 마음대로 만들어낼 것이니, 이런 인물이 어찌 세속의 일에 관계하려 하겠는가?

 

() 나라 사람이 장보관(章甫冠)6)을 팔려고 월() 나라로 갔더니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문신(文身)을 하였기 때문에 그 갓이 쓰일 곳이 없었네.

 

()는 천하의 백성을 다스려 나라 안의 정치를 고르게 한 다음 분수(汾水)7)의 북쪽 묘고야산으로 가서 네 신선을 만나보고는 멍해져서 천하를 잊어버렸다고 하네

 

혜자8)가 장자에게 말했다.

()나라 왕이 나에게 큰 박씨를 하나 보내주므로, 이것을 심었더니 닷 섬짜리 박이 열렸네. 그 속에다 장을 채워 두었더니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고, 다시 두 쪽으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으나 너무 넓어서 쓸 수가 있어야지. 텅 비어 크기는 했지만, 나는 아무 소용없어 그것을 부수어 버렸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참으로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 () 나라 사람 중에 손 트는 데 쓰는 약을 잘 만드는 자가 있었지. 그러나 그는 대대로 세탁업을 하고 있었네. 어떤 사람이 그 소문을 듣고 그 약방문을 백금(百金)을 주고 사려 하였네. 그래서 그 사람은 가족을 모아놓고 우리는 대대로 세탁업을 해왔지만 겨우 몇 푼 벌이밖에 못해 왔다. 이제 그 약방문을 팔면 하루 아침에 백금을 얻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팔아버리자.하였다네. 그래서 그 손님은 이 약방문을 가지고 곧 오왕(吳王)을 찾아가 그 약방문에 대하여 유세를 했네. 그후 오() 나라는 월()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오왕은 그 사람을 장군으로 삼았네. 겨울에 월나라와 수전(水戰)을 하여 월나라 군사를 크게 쳐부수었네. 그래서 오왕은 그 사람에게 땅을 베어 봉토(封土)를 주었네. 이로 볼 때 손 트는 데 쓰는 약방문은 한 가지지만 한 사람은 땅을 하사받았고 한 사람은 세탁업을 면하는 데 그쳤으니, 이는 쓰는 법이 달랐기 때문일세.

 

지금 자네는 닷 섬짜리 바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것으로 큰 통을 만들어 강호(江湖)에 띄울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것이 넓어서 쓸 데가 없다고만 근심하는가? 자네야말로 아직도 몹시 옹졸한 생각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군.”

 

혜자는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부르네. 그 밑둥은 혹투성이라 먹줄을 댈 수가 없고, 그 작은 가지들도 꼬불꼬불해서 규구(規矩)9)에 맞지를 않네. 그것이 길가에 서 있으나 목수가 돌아보지도 않네. 지금 그대의 말은 이 나무와 같아 커도 소용이 없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돌보지도 않을 것일세.”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삵괭이를 보지 못했는가? 그놈이 땅에 납작 엎드려 짐승을 기다리고 있다가 이리저리 날뛰며 높은 곳 낮은 곳도 가리지 않다가 혹 덫에 치이기도 하고 혹은 그물에 걸려 죽는다네. 그러나 지금 저 들소는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지만 한 마리의 쥐를 잡지 못하네. 이제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 데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만, 왜 그것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인 광막한 들에다 심어놓고 그 곁을 방황하면서 무위(無爲)로 날을 보내고 소요하다가 그 밑에서 드러눕지를 않는가? 그러면 그 나무는 도끼에 베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에게도 해를 입을 염려가 없네. 쓰일 데가 없으니 또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1) 견오: 전설적인 득도자

2) 연숙: 전설적인 현인

3) 접여: 춘추시대 초나라 은자

4) 하한: 은하

5) 묘고야산: 신선이 산다는 산 이름

6) 장보관: 은나라 시대의 갓 이름

7) 분수: 요가 도읍을 세웠다는 산서성 평양 부근을 흐르는 강

8) 혜자: 전국시대 장자와 같은 때의 논리학자, 정치가, 사상가. 원이름은 혜시.

9) 규구: 컴퍼스와 자. 수준기(水準器)와 먹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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