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룡이 위(魏) 나라 공자 모(牟)에 물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의 도를 배웠고, 장성하여서는 인의(仁義)의 도에 밝아, 동이(同異)를 일치시켜 논하고, 견백(堅白)을 분리시켰으며,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여 많은 사람의 지혜를 괴롭히고, 여러 사람의 변론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지극히 통달했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장자의 말을 듣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하며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저의 이론이 그를 따르지 못하는 것인지, 제 지혜가 그만 못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장자의 도에 대하여 여쭙는 바입니다.”
공자 모는 책상에 기대어 크게 탄식하고 하늘을 우러러 웃으면서 말하기를,
“너는 우물 안 개구리란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어느 날 이 개구리가 동해에 있는 자라에게, “나는 즐겁다. 나는 우물의 난간 위에까지 뛰어오르기도 하고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깨진 벽돌 가에서 쉬기도 하며 물속에서는 양 겨드랑이로 수면에 떠서 턱을 물위로 내밀기도 하고, 진흙을 차면 발이 파묻혀 발등까지 흙에 파묻히네. 저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 따위가 나를 따를 수 있겠는가? 더욱이 나는 한 우물의 물을 독차지해서 멋대로 노는 즐거움이 지극한데, 당신은 어째서 때때로 와서 구경하지 않소”라고 했단다. 그래서 동해의 자라가 이 말을 듣고 그 우물로 와서 들어가려 하는데 왼쪽 다리가 들어가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이 걸려버렸다. 그래서 엉금엉금 물러나와 개구리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대저 천리라는 먼 거리로도 바다의 넓이를 형용할 수 없고, 천길이란 높이로도 바다의 깊이를 다 나타낼 수가 없다. 우(禹) 임금 때는 10년 동안에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렇다고 수량이 조금이라도 더 널지 않았고, 탕(湯) 임금 때는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가물었으나, 그 때문에 수량이 조금도 줄진 않았다. 대개 시간의 장단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물의 다소에 따라 증감하지 않는 것은, 이것이 또한 동해의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단다. 그랬더니 우물 안 개구리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정신을 잃었다고 하더라.
또한 대체로 지혜가 시비(是非)의 한계도 알지 못하면서 장자의 말을 알려고 한다면 이는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라는 것 같고, 노래기더러 황하를 건너가라는 것 같아, 반드시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대체로 그 지혜가 지극히 묘한 말을 논할 줄 모르면서 궤변으로 한때의 명리에 만족하고 있는 자는 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지 않느냐. 또 장자의 말은 아래는 황천에 이르고 위로는 하늘에까지 이르러 남쪽도 없고 북쪽도 없이 환히 사방으로 통달해 있어 헤아릴 수 없는 깊이에까지 잠기어 있으며, 또 거기에는 동쪽도 없고 서쪽도 없이 아득히 우주의 근본에서 시작하여 자연의 대도에 귀일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잗달게 길러진 태도와 하찮은 관찰로써 그것을 구하고 엉터리 변론으로써 그것을 찾고 있다. 이는 곧 가느다란 대롱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송곳으로 땅을 찔러 보는 격이다. 또한 좁은 소견이 아닌가? 너는 돌아가거라. 너만이 수릉(壽陵) 땅의 젊은이가 조나라 서울 한단에 가서 걸음걸이를 배운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그 젊은이는 한단에서 걸음걸이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옛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갔단다. 지금 네가 빨리 가지 않으면 옛 걸음걸이도 잊어버릴 것이고 너의 본업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공손룡은 입을 벌린 채 닫지도 못하고 혀를 내민 채 끌어들이지도 못하고 달아나버렸다.
*정저지와(井底之蛙), 한단지보(邯鄲之步), 용관규천(用管窺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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