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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연금술과 모순(矛盾)

by 두마리 4 2025. 5. 11.

금 한 돈(3.75g) 시세가 팔 때는 555,000원이고 살 때는 647,000원이다. 금을 만들 수 있다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 연금술(鍊金術)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라비아를 거쳐 중세 유럽에 전해진 원시적 화학 기술이다. 구리··주석 따위의 비금속(卑金屬)으로 금·은 따위의 귀금속을 제조하고, 나아가서는 늙지 않는 영약(靈藥)을 만들려고 한 화학 기술이다. 근대 화학이 성립하기 이전까지 천 년 이상 계속되었다.

 

그런데 실제 금을 만들게 되면 모순(矛盾)이 발생한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금을 만드는 양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또 그 비법이 다른 사람들한테 전수되지 않겠는가. 금이 흔하게 되면 금값은 떨어지고 금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귀하고 가치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 금도 금 아닌 것들이 있기에 가치가 있다. 금만 있다면 금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금의 가치는 금 아닌 것들이 만들어준다. ‘의 가치는 아닌 것들이 만들어주듯이.

 

늙지 않는 영약(靈藥)도 가능하게 되면 연금술과 마찬가지로 모순이 발생한다. 늙지 않으면 죽지 않는 영생(永生)이 가능하다. 오래 살고 죽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이 꿈꾸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영생이 실제로 실현되면 인류의 모든 것은 의미와 가치가 없어져 오히려 종말(終末)을 맞을 것이다.

 

미래를 아는 것도 마찬가지의 모순이 발생한다. 실제로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안 좋은 미래가 보인다면 바꾸려고 할 것이다. 닥쳐올 미래를 미리 알고 현재에 내가 바꾼다면 그것은 미리 알아본 그 미래가 아니다. 좋은 미래가 보인다면 닥쳐오기도 전에 좋아서 설레발을 칠 것이다. 그러다가 그 미래가 달라지면 이미 알아본 그 미래가 아니다.

 

미래를 미리 정확하게 본다면 복권 당첨 번호를 모를 리가 없다. 아무리 용하다 한들 복권번호를 미리 알려준다는 무당이나 철학관을 보지 못했다. 진짜 알 수 있다면 자신이 복권을 사지 남한테 알려줄 리가 없다. 어떤 무당이 복권번호를 매번 맞춘다면 더 이상 복권 체계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세상의 미래를 정확하게 미리 본다면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이것은 금을 만들고, 영생불사약을 진짜로 만들게 되면 오는 세상과 똑같다.

 

연금술사에서 점쟁이가 낙타몰이꾼에게 미래를 왜 알고 싶은가 묻는다. 낙타몰이꾼은 일이 닥쳤을 때 무언가를 할 수 있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자 점쟁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미래가 될 수 없겠군. 만일 그게 좋은 일이라면, 아주 즐거운 놀라움이 될거야. 하지만 좋지 않은 일이라면, 그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걸로 고통받을 테고.

그럼 난 어떻게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건 현재의 표지들 덕분이지.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고. 신께서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래를 잘 보여주시지 않아. 한 가지 예외란 바로, 미래가 바뀌도록 기록되어 있ᅌᅳᆯ 때를 말하지.”

 

나의 과거가 쌓여서 나의 현재가 된다. 나의 현재가 보이고 있는 표지, 징표, 조짐을 보면 나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사주(四柱)로 점을 치는 것은 우연히 결정된 나의 표지로 내 삶의 운명을 보는 것이다. 타로카드나 동전 던지기는 우연적인 현재의 표지로 나의 미래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의사의 진료도 환자의 현재 표지로 신체 내부와 그 신체의 미래를 짐작하는 것이다. 의사는 대소변, 혈액, 맥박, 신체의 빛깔, 의료기기의 촬영 결과 등 여러 징표를 보고 종합해서 진단한다.

 

아무튼 미래를 짐작할 때는 현재의 표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관상이나 팔자를 타고 났다고 한들,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데 그 운명대로 이루어질 리는 없다. 반대로 아무리 나쁜 사주라 한들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계속 안 좋을 리는 없다.

 

미래를 보기 위한 점은 안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점을 보고 싶으면 그보다 먼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답을 찾기 어려우면 먼저, 가족이나 측근에게, 전문가에게, 친구에게,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어떤 점이든 미래를 보려는 점은 맨 나중에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지신명에게 맡기는 기분으로 봐야 한다.

 

연금술사에서 나오는 연금술’, ‘철학자의 돌’, ‘불로장생의 묘약은 은유이고 상징이다. 삶의 연금술이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자신의 꿈인 피라미드를 보려고 길을 떠나 사막을 여행한다. 산티아고는 길에서 노파를 만나고 영감을 만나고, 크리스털 가게 주인을 만나고, 낙타몰이꾼을 만나고, 연금술사를 만나고, 전투를 벌이는 전사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여인 파티마를 만난다.

 

산티아고는 성(saint)야보고(이아고Iago)가 변형된 것이다. ‘파티마는 이슬람권에서 성모 마리아와 유사한 역할로,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꼽힌다. 주인공 이름으로 봐서 연금술사는 다분히 영적(靈的)이고 성()스러운 면이 있다. ‘산티아고는 순례를 상징한다. 순례를 통해서 삶의 연금술을 깨닫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는 방법을 찾는다.

연금술사에는 새길 만한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양치기들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책보다 양들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겠죠.”

세상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지나간단다. 그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서 오지.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똑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뿐이야.”

세상으로 나가 맘껏 돌아다녀. 우리의 성이 가장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배울 때까지 말이다.”

인생을 살맛나게 해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어떤 사람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리면 그는 세찬 물줄기 속으로 잠겨들어서, 결심한 순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난 음식을 먹는 동안엔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소. 걸어야 할 땐 걷는 것, 그게 다지. 만일 내가 싸워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게 언제가 됐든 남들처럼 싸우다 미련 없이 죽을 거요.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오직 금만을 찾으려는 자들이 있었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그 비밀을 찾아내지 못했어. 납과 구리, 쇠에게도 역시 이루어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다는 걸 잊었던 걸세. 다른 사물의 자아의 신화를 방해하는 자는 그 자신의 신화를 결코 찾지 못하는 법이지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다른 사람들을 봄으로써 를 보게 된다. 서두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의 죽음 후 호수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세상에서 마땅한 나의 몫을 찾고 거기에 성실하며 만족하는 것, 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거나 또는 나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연금술이 아닐까.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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