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복이 두려워 점을 쳐봤는데 지천태괘(地天泰卦䷊)를 얻었다. 변효가 초효, 4효다. 점괘가 묘하다. 지극히 태평한 괘가 나왔다. 태괘의 괘사로 보면 물음에 대한 답은 ‘작은 것(음)이 가고 큰 것(양)이 오니 길하고 형통함’이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가능성은 상대가 보복할 수도 있고, 보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반이다. 어느 쪽이 마음이 편안할까. 보복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반역(도전괘)과 변역(배합괘)가 모두 천지비괘(天地否卦䷵)다. 비(否)는 ‘사람의 도가 아니라, 군자로서 일을 맡아 해도 이롭지 않음이며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옴’이다. 사람의 도리가 아니며 군자답게 일을 해도 이롭지 않을 것이며 막히고 답답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이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의 근본은 상대로 인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일으키는 것이다. 상대와 관련은 있지만 스스로 짓는 두려움이다. 즉 상대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갖는 두려움이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반역과 변역을 합치면 다시 지천태괘(地天泰卦䷊)가 된다. 태(泰)의 자세, 즉 넉넉하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겉으로는 곤괘(坤卦☷)의 자세, 즉 감추고 기르고 따르고 부드럽게 처신해야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건괘(乾卦☰)의 자세, 즉 강건하고 차갑고 냉정하게 싸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자세다.
건괘(乾☰)은 금(金)이다. 금(金)에는 가을의 기운 즉 모든 것을 죽게 하는 살(殺)이 있다. 잘못은 저지른 상대가 그에 마땅한 벌을 받게 하는 것은 살(殺)이다. 두려움은 죄를 지은 사람이 가져야 한다. 스스로 잘못했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상대는 마땅한 벌을 받았고, 개과천선하여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에 상대가 보복한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은 끝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접근금지나, 신변보호 요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신변보호를 한다고 하더라도 24시간 붙어있을 수는 없다. 조짐이나 낌새가 느껴진다면 이런 지원을 받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스스로 마음을 바꿔 먹어야 한다. 보복해봐야 죽이기밖에 더하겠냐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당해져야 한다. 두려워하는 순간, 스스로의 삶은 무너진다.
변효를 보자. 초효사는 ‘띠풀 하나를 뽑으면 다른 뿌리들도 함께 뽑히는 모습으로, 그 동류로 함께 나아가니, 길함’이다. 마음 하나를 바꿔먹으면 모든 것이 줄줄이 해소된다는 뜻이다. 4효사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서, 부유하지 않은데도 그 이웃과 함께하니, 경계하지 않아도 믿음직스러움’이다. 자신을 낮추고 이웃과 함께 나누고 믿음을 쌓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삶은 자신감을 키워준다.
영수 변효 3효사는 ‘평평한 것은 기울어지고 나아간 모든 것은 되돌아오니, 어려움을 알면서 일을 맡아 하면 허물어 없어서, 근심하지 않아도 믿음직하여 먹는 데 복이 있음’이다. 평평하기만 한 것도 없고 기울어지기만 하는 것도 없다. 또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도 없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려움을 알고 일을 대하면 크게 문제가 없다. 피하지 말고 어떤 어려움인지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극복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괘(之卦)를 보자. 초효, 4효가 변효다. 지풍승괘(䷭)→뢰천대장(䷡)→뇌풍항괘(䷟)로 변한다. 소성괘로 보면 손괘(☴)와 진괘(☳)가 생긴다. 손(巽☴)은 ‘바람’, ‘동요(動搖)’, ‘흩트림’, ‘깨끗하고 가지런함’이다. 진(震☳)은 ‘움직임’, ‘나옴’이다. 안이하게 있으면서 두려워만 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움직여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흔들고 흩트려서 다시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정돈해야 한다. 기독교든 불교든 신앙생활로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독실(篤實)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삶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다. 삼년 고개 이야기가 있다. 삼년 고개에 한 번 넘어지면 삼 년밖에 못 산다. 그렇게 믿으면 진짜 그렇게 된다. 스스로의 심리와 마음가짐이 스스로를 죽여 삼 년만에 죽게 된다. 한 번 넘으지면 3년 사니까, 두 번 넘어지면 6년 산다는 생각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다. 자주 넘어질수록 더 오래 산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겁날 것이 없다. 말처럼 쉽지 않다면 두려움의 정도가 심하다면 오히려 마음을 바꿔먹기는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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