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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들깨와 천뢰무망(天雷无妄)

by 두마리 4 2024. 10. 31.

어제 들깨 수확을 했다. 경작한 들깨가 아니다. 2년 전에 들깨를 한 번 심은 뒤 그 씨가 떨어져 저절로 난 것들이다. 양파를 수확한 두둑에 저절로 올라왔다. 양파의 생장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뽑았는데, 그 후에 자란 것들이다. 처음에는 잡초를 몇 번 뽑아 주었다. 들깨 한 포기가 워낙 무성하게 가지를 벌어 다른 잡초들을 모두 덮어 제대로 크지 못하게 만들었다.

 

노지(露地) 들깨다. 거의 야생(野生) 들깨라고 할 수 있다. 들깨의 야생으로 자라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들벌, 들오리, 들국화, 들개, 들고양이 등의 낱말에서 볼 수 있다. 들깨는 재배를 하지만 야생의 생명력이 강하다. 한 번 심으면 그 씨가 떨어져 해마다 올라오고, 내버려둬도 잘 자란다. 다른 잡초들과의 경쟁력도 강하다.

 

경작하지 않은 들깨인데, 깻잎을 실컷 따 먹는다. 하우스 안에서 재배되어 시장에 나오는 깻잎에 비해 향이 강하다. 꽃이 피고 떨어지면서 들깨 열매 꼬투리가 만들어질 때 그 꼬투리를 따서 부침가루를 묻혀 튀겨도 먹는다.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 들깨 알이 톡톡 터져 입안에 퍼지는 들깨 향의 맛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찹살가루 발라서 들깨 꼬투리 부각을 만들 수도 있다.

 

경작하지 않은 것이라 깻잎만 따먹어도 족하다. 하지만 들깨 알을 포기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들깨 열매가 많았다. 작년에는 털어놓았다가 뒷마무리를 못하고 어정거리다 겨울이 왔고, 그러다가 버리고 말았다. 올해는 유튜브에서 들깨 수확 방법을 찾아봤다. 꼬투리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궁을 베어 바로 타작하는 방법이 있었다. 베고 말리는 과정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대궁의 중간이나 밑에 달린 꼬투리는 마르지 않아 수확량은 좀 적을 것이지만, 간단해서 좋았다. 대궁에 달린 채로 끝까지 여물었으니 맛과 향도 더 좋으리라.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들깨를 털었다. 깨가 쏟아지게(?) 떨었다. 막대기를 쥔 오른손에 물집이 세 군데나 생겼다. 새까만 들깨알이 깨알(?)같이 작았다. 거의 야생이라 더 작은 것 같다. 깨알이 너무 작아 수확하는 재미는 덜하다. 하지만 대궁을 막대기로 때릴 때마다 비닐 멍석 위로 좌르르 깨알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퍼져 오르는 들깨 향기를 맡는 즐거움도 있다.

 

들깨를 수확하면서 주역(周易)25번 째 괘인 천뢰무망(天雷无妄䷘)이 생각났다. 무망(无妄)은 망령됨이 없음이다. 건괘(乾卦)인 하늘이 위에 있고 우레같은 움직임을 상징하는 진괘(震卦)가 아래에 있다. 하늘로써 움직임이니 무망이다. 무망은 천지자연의 지극한 진실과 정성이다. 하늘이 끊임없이 사계절의 기운에 따라 싹을 틔우고 기르고 여물고 저장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덕이다. 여기에 개입하는 인간이 바르게 하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 함부로 가면 이롭지 않다.

 

무망괘의 2효에 경작하지 않고도 수확하며 밭을 만들지 않고도 밭이 된다는 말이 나온다. 들깨는 경작하지 않고도 수확할 수 있다. 밭을 만들지 않고도 들깨밭이 된다. 들깨는 자연의 기운, 사계절의 원리를 거스러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다. 농사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도 인위적으로 하는 일들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거스려서 오히려 재앙을 초래하는 면은 없는지 늘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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