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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나는 왜 어머니의 삶을 기록하지 못했을까

by 두마리 4 2024. 3. 2.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9개월이 지났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내 손으로 어머니 일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어머니 기억이 더 흐릿해지시기 전에 말씀을 듣고 녹음을 해서 글로 옮기고 싶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10대 시절, 열 아홉에 결혼하고 20, 30, 40, 50대 중반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60, 70, 80대의 삶을 사진과 함께 정리해서 행장(行狀)이 되든 책이 되든 쓰고 싶었다.

 

90대 중반까지 사셨던 외할머니 생각하며 어머니도 막연히 그때까지는 사실 줄 알고 뭉기적거리고 있는 사이 어머니는 어느 날 쓰러지셨고 말문을 닫으셨다. 회한(悔恨)으로 남고 말았다.

 

전경호 집사 우리 엄마는 딸이 쓴 엄마에 대한 기록이다. 일기와도 같은 삶의 기록이지만 소설 못지 않은 서사가 담겨 있다.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의 역경과 시대적 고난도 함께 담겨 있어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일상의 모습에 대한 관찰, 묘사, 설명, 서술이 기성 작가 못지 않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겪었을 만한 보편성을 띄고 있다. 일부러 꾸며낸 소설 못지 않게 몰입하게 하고 재미 또한 있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힘있게 흐르는 물줄기는 믿음, 즉 신앙의 힘이다. 가장 빛나고 영험한 부분이다. 강한 믿음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강한 믿음은 삶의 역경과 고통을 이겨내게 하고 마지막 죽음마저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할 수 있음을 본다. 기도로 상처를 치유하고, 영적 체험이나 예지몽으로 앞일을 내다보는 일 등도 간절한 믿음의 힘이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이나 심리적인 믿음이 물리적인 세계에 현상으로 발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어머니께서 대장암 수술은 했지만 그 외의 항암 치료를 거부하신 점, 비교적 육체와 정신이 온전하실 때 지인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신 점,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아름다운 꽃다발을 선물하여 보고 즐기게 하신 점, 어머니께서 마지막 날을 예감하여 친척과의 인사, 장례 준비 등 여러 가지 정리를 차근차근히 하신 점 등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있다. “믿는 자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 빨리 가고 싶네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야말로 가장 강한 것이 아닐까.

 

모세는 한 민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고 우리 엄마는 한 가정을 구원하는 중심에 있다.” 한 가정을 구원하는 것은 한 민족을 구원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저마다의 가정이 구원되면 그 집합체인 민족을 따로 구원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나는 집에서 자연사하고 싶다. 몸은 불편하지만 나는 지금 마음은 행복하다.” 집에서 자연사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나 불교 등의 종교든, 아니면 나름대로의 믿음이든, 그 믿음의 힘으로 스스로 예감하는 죽음, 스스로 모든 것을 정리한 뒤에 깨끗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전경호 집사 우리 엄마(고현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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