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山水 蒙 산수몽
중천건, 중지곤에 이어 세 번째 괘는 수뢰둔, 처음 태어난 것들은 당연히 뭘 해야하는지 모른다. 이 막막함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배움’이다. 그래서 네 번째 괘는 산수몽이고, 몽은 어리석음을 말한다.
蒙 (몽)= 豕 (돼지시)+ 冖(덮을 멱)+ 艹(풀초) 로 이루어진 글자지만 원래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덮어써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형상화한 글자라 한다. 그런데 금문으로 변하며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돼지가 와서 ‘어리석고 우둔하여 눈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괘상으로 보면 산 아래 물이 있다. 산 아래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시원하지만, 아직은 작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로 흘러 가야할지 모른다.
상징적으로 보면 산은 그침이고, 물은 험함이다. 험한 것에 멈춰있으니 몽한 상태다. 또, 소성괘의 가족상을 보면 산은 소남이고 물은 중남이다. 막내가 형님에게 배운다.
다른 괘들에 비해 비교적 읽어내기 쉬웠던 괘다.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배움이 필요하지. 하는 일이 교사인지라 배움의 공간에 살고 있고, 하고 싶은 짓이 배우는 것이라 배움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인간이라 이건 쉽다! 했지만 역시 주역은 만만하지 않다.
내가 동몽을 구하는 게 아니라 동몽이 나를 구하는 것이라는 말, 처음 물으면 알려주고, 두 세면 물으면 알려주지 않는다? 학교라는 배움터에서 학생이 스승을 찾으러 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학교에서는 학생이나 교사나 각자의 의무감으로 서로를 만나기 마련. 그리고 교사란 학생이 묻지 않아도 진도만큼 말해주어야 한다. 특성화고에 있어보니 학생들은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데, 교사만 자꾸 말하게 된다. 그래서 수업을 진행할수록 학생은 산처럼 꿈쩍도 않고, 교사인 나만 똑똑해진다. 문제다 문제. 맹자의 군자삼락 중 마지막이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즐거움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르쳐서 알아듣고 묻는 학생... 나도 만나고 싶다.
초육은 형벌을 써서라도 몽매함에서 벗어나게 해줘야하는데, 벌만 줘서는 안돼고 법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한다. 극 공감! 나는 고교시절 많이 맞으면서 다녔다. 그건 벌이 아니라 폭행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벌, 매 등을 혐오했다. 그러나 요사이 너무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 갈등하게 한다. 다시 매가 필요한가? 그런데 이 구절은 매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우짜지?
구이는 어리석음을 너그럽게 포용하란다. 내가 잘 못하긴 해도 지극히 맞는 말씀. 패스. 아참, 이 괘에서 스승님의 자리가 바로 구이란다.
육삼은 제짝은 상구고, 구이 위에 자리 잡았다. 상구와 구이를 놓고 저울질하는 육삼이 좋게 이야기될 리가 없다. 돈에 혹하는 여자로 이야기한다. 심지어 대산샘은 육삼을 교육의 가치가 없을 정도로 불순한 자라고 했다. 교육의 가치가 없을 정도의 망나니들을 쫌 보았는데... 그놈들은 교육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근데 오늘 문득 육삼의 견금부가 살짝 다르게 읽힌다. 배움의 과정에서 돈이 되나 안 되나부터 먼저 따지는 학생으로~)
육사는 곤몽이다. 곤이 나무가 네모 속에 갇힌 형세니... 육사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뭘 배우고 싶어도 가르칠 수 있는 구이나 상구가 너무 멀다. 결국 육사는 혼자 공부해야할 처지다. 힘들다고 배움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힘들어도 배움을 이어나간다면 화수미제로 가니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여기서 문득 공자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 배워서 아는 자, 고생하면서 배우는 자, 고생하면서도 배우지 않는 자의 구분. 고생해도 배워야 한다!!!
맥락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늘 생이지지를 부러워하면서 내가 곤이학지라고 생각했다. 졸라 고생해야 뭘 쫌 알게 되는 인간. 그래도 다행이다. 배우려는 마음은 있어서...
孔子曰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공자왈 생이지지자 상야 학이지지자 차야 곤이학지 우기차야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육오는 구이의 짝이고, 스승님께 바르게 배우는 천진난만한 제자다. 순하고 공손하게 스승을 대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라 길하다.
상구는 이미 알 만큼 안다고 자칫 자만하고 쉽고, 제 짝이 하필 육삼으로 교육의 가치조차 없다는 이라서 위험하다. 도고마장(道高魔長)이라했다.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고 작심하고 앉으면 유혹도 많다.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성취할 수 있다. 정신차리자!
대략 괘의 의미를 거칠게 짚어보았다. 근데 이 괘를 읽으면서 진지해졌던 지점이 있었다.
진짜 고민. 내가 배우는 자의 길에서 나는 종종 나의 스승들을 쉽게 의심한다. 그리고 따를까 말까 갈등하고. 그래서 이 괘를 읽을 때마다 배우는 자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배우는 자로서 나는 스승들에게 재삼 독(再三 瀆)하는 일 말고도 문제가 많았다. 공부보다 돈 되는 일 해야하지 않을까 고민도 하고, 기타등등의 유혹에도 잘 빠진다. 그리하여, 주역 공부 어언 10년이 되도록 가방 안에서 책만 쓸려 낡았고, 내 머리는 여전히 텅 비었고, 내 몸과 행실은 여전하다. 거기다 이게 젤 심한데, 실제 공부하지 않으면서 자주 드는 의심. 이거 내가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ㅎㅎㅎ
이럴 때 스승들은 말하겠지. 닥치고 공부나 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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