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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글쓰기/주역 유감

'시작'의 어려움과 머뭇거림, 좌충우돌, 좌절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

by 野垠 2023. 1. 21.

3.   수뢰 둔, 수뢰 준(水雷 屯) 

 

  천지가 사귀어서 처음 나온 것이 水雷 屯이다. 진 치다, 수비하다, 병영, 언덕의 의미를 지닌 으로도, ‘어렵다, 무리를 이루다, 견고하다, 험난하다, 태초의 의미를 지닌 준으로도 읽힌다. 괘의 상황을 보자면 으로 읽는 것이 더 합당할 듯하나 나는 오랫동안 으로 읽어서 아직 버릇처럼 으로 읽게 된다.

  屯은 땅을 뚫고 올라오려는 싹의 모습을 형상한 글자이다. 여리디 여린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물론 봄에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 저기 돋아난 새싹을 보지만 말이다.

  상(象)으로 보자면 위에 물이 있고 아래에 우레가 있다. 우레가 아래에 있는 걸 보니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구름이다. 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고, 우레가 으르렁거린다. 우레는 구름 속의 음과 양이 부딪혀 생기겠다. 구름 속에서 음양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우르렁거리고 있다면 혼돈 속이겠다. 여차하면 비가 내릴 듯도 하다. 비가 내리면 새싹이 더 잘 자라나겠지.

또 내괘 은 동쪽이고, 봄이다. 외괘 는 북쪽이고, 겨울이다. 땅위는 아직 겨울인데 저 땅속에서 봄의 기운을 품고 씨앗에서 싹이 나오는 상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수뢰 준괘는 양효가 초와 5의 자리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모두 음이다. 초구와 육사, 육이와 구오가 서로 짝이 된다. 그런데 육삼은 상육과 같은 음이라 짝을 이루지 못한다.

 

  사는 일도, 하다못해 어딜 가도 '처음'은 어렵고 힘들다시작의 시점이 오죽 어려웠으면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 괘는 처음 생겨나 어렵고 힘든 상황을 상징한다. 그래도 그 상황을 겪고 나면 새싹은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래서 괘사(卦辭)에서는 원형(元亨)과 이정(利貞)을 모두 썼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이니 어디 가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지켜줄 능력자를 두라고 한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다. 단사(彖辭)에서는 자신을 지켜줄 능력자를 구했다고 다된 것이 아니라 그래도 여전히 편안함을 추구하지 말라고 한다. 대상사(大象辭)에서 군자는 수뢰 준괘를 보고 언젠가 단비가 내릴 것을 믿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세상을 다스린다고 한다. 수뢰의 상에서 경륜을 뽑아내는 공자의 사고가 놀라울 따름이다.

  초구는 제자리에 있으며(정위) 제짝(정응)도 있다. 그런데 왜 머뭇거릴까? 양이 양자리에 있고, 의 특성상 나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호괘(산지박 山地剝 ䷖)로 보면 위에 이 두텁게 있으니 이 흙을 뚫고 나가야 하므로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위에 있는 육이와 친비가 된다. 자라면서 내내 이웃에서 함께 놀았던 육이를 두고 육사를 만나러 가기에 주저됨이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괘에서 유일한 양이니 일단은 바른 데 처해 올바름을 지키고 이건후(利建侯)하여 좀 더 실력을 쌓아 아랫동네의 민심을 얻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육사가 말 타고 찾아온다.

  육이도 제자리에 있으며 제짝도 있다. 그런데 이 친구도 머뭇거리고 말을 탔다가 내리기까지 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초구를 떠나 구오의 짝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직은 어려운가보다. 그래도 중을 얻은 이라 바름을 지키고 있다. 결국 십년 쯤 시간이 지나면 도적이 아니라 장가들러 온 구오를 맞이하게 된다.

  육삼은 뜬금없이 사슴 사냥하러 숲으로 들어간다. 몰이꾼, 즉 안내자도 없이 함부로 들어가면 길을 잃고 심하면 목숨마저 위협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미를 알고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육삼은 주변에 자신을 이끌어줄 양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육삼의 자리다보니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그게 사슴 사냥이다. 그러나 괜히 사슴에 욕심내지 말자. 우리 삶이 小貪大失이 아닌 적이 있었으랴만, 기미를 알고 욕심을 접어야 한다.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고, 짝도 상육이라 정응이 안 된다. 게다가 이웃에 믿을만한 이성 친구(친비)도 없다. 암튼 다른 효사와는 이질적인 내용이 있는 효사이긴 하지만 육삼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육사는 제짝인 초구를 찾으러 가야 한다. 그런데 이 친구도 구오라는 멋진 이성이 옆에 있어서인가? 말을 탔다 내렸다하며 머뭇거리고 있다. 그러나 제자리(정위)에 있어 혼인할 초구를 찾아가면 이롭다고 한다. 4위가 좋은 경우가 별로 없는데 예외의 모습이다.

  구오는 정위에, 득중, 정응하는 짝도 있고, 모든 게 갖춰진 상황인데 뭔가 이상하다. 소정은 길하고 대정은 흉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이 구절을 나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그랬다. 육사에게 자기 짝이 아니라고 박절하게 대하고, 육이에게 초구와 뭔 일 있었나 의심하면서 크게 바른 것을 고집하면 흉하고, 제짝은 아니더라도 육사나 상육에게 친절하고, 육이가 말을 탔다 내렸다하면서 머뭇거린 것에 대해서도 감싸주면서 적당히 바른 삶을 추구한다면 길하다고.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없다는 말도 있으니... 그런가? 일단 패스.

  상육은 제자리에 있지만 짝이 없다. 짝 찾으러 가려고 말까지 탔는데 알고 보니 구삼이 아니라 육삼이네. 더구나 구오는 육이와 혼인한다하고, 말에서 내려 자기만 짝없다고 엉엉 운다. 얼마나 상심이 크면 피눈물까지 흘린다. 그러나 소상전에서 말한다. 피눈물의 상황은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상육은 정신 차리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겠다.

 

  이렇게 水雷 屯괘를 읽어내면서 나는 이 괘가 시작의 어려움에 대한 느낌보다는 짝 찾기의 어려움이 더 강하게 와 닿아 처음에는 혼인괘라고 생각할 뻔~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시작하는 자들의 머뭇거림과 결단, 예상과 다른 상황에서 느끼는 좌절이 보인다.

  처음 이 괘를 읽을 때 나는 상육이 어찌나 가엾던지... 피눈물을 흘리는 상육 때문에 주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자리()에 반발심이 매우 컸었다. 이괘는 시간의 추이보다는 공간(자리)의 중요성이 확 와 닿았다.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운명을 좌우한다.

 

중지곤을 읽으며, 태어나 보니 여자였는데~ 하면서 빡치고,

수뢰둔을 읽으며, 태어나 보니 흙수저 자린데~하면서 빡친 것 같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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