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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어느 하루

by 두마리 4 2023. 8. 27.

아침 여섯 시, 일어나니 비가 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예보상으로 오늘은 오전 오후 모두 비였다. 비도 오지 않고 날도 흐린 게 아니라, 햇빛이 보였다. 비 예보가 오후로 밀려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일정한 운동을 모두 생략하고 서둘러 밭으로 갔다. 오후에 비가 온다니 오전이 배추 심기에 적당하다.

 

고추 심은 자리에 배추를 더 심어야 하기에 고추를 다 뽑았다. 고추는 서리가 올 때까지 따 먹을 수 있는데 아까웠다. 마디마다 꽃이 계속 피고 있었다. 꽃진 자리마다 작은 고추들이 연달아 크고 있었다. 큰 고추, 작은 고추 구분없이 모두 따고 고추 꽃이 피는 끝 부분의 부드러운 잎을 땄다. 고추 나물을 실컷 먹을 수 있는 기회다.

 

고추 대궁을 뽑아낸 다음, 비닐을 걷어내고 잡초와 옥수수대 등을 걷어냈다. 관리기로 두 번 갈아엎으면서 나오는 돌들을 골라냈다. 퇴비를 뿌리고 한 번 더 관리기로 흙을 갈아엎었다. 흙이 마치 밀가루나 쌀가루처럼 부드러웠다. 이랑을 만들고 배추 모종을 사러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언양 장날이었다. 반판 60포기를 샀다. 제일 좋다는 모종인데 8,000원 했다. 앞에 심었던 배추 모종이 헤아려 보니 20포기 정도는 벌써 죽었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땅에 뿌리를 박기 전에 비가 너무 와버려서 죽은 것이다.

 

배추를 심으면서 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봤다. 비가 올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후에 비가 올 것을 믿고 배추를 심었다. 배추를 심고 물을 주었다. 오이 몇 개, 치커리 좀 따고, 가지 몇 개, 땡초 고추를 좀 수확해서 집에 오니 12시가 다 되었다. 옷은 땀으로 물에 적셔 놓은 듯하다. 샤워하고 점심 먹고, 보도자료 기사를 몇 건 처리했다.

 

점심 먹고 잠깐 쉬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을 봤다. 혐오, 따돌림, 학교 폭력, 유튜버, 성형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얽혀있는 드라마였다. 따로 글을 한번 써야겠다.

 

오후 330분에 테니스클럽 월례회에 참가했다. 집에 돌아오니 8시 가까이 됐다. 옷이 또 한번 땀으로 흠뻑 젖었다. 들어오면서 막걸리를 두 병 샀다. 1900원짜리는 다 떨어져 1700원짜리를 샀다. 한 병에 천 원 할 때부터 한 두병 집에서 먹었던 것 같은데, 가격이 꽤 올랐다. 땀을 많이 흘린 다음에 마시는 막걸리나 맥주 한 잔의 맛은 특별하다. 반찬도 막걸리 안주로 딱이다. 모두 텃밭에서 농사지은 것들이다. 고추 쪄서 무친 것, 고추나물 무침, 양파볶음, 부추나물, 가지무침, 감자찌개, 풋고추, 상추와 치커리 야채. 막걸리 맛을 느끼는 온몸의 세포들이 좋아서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바짝 마른 논에 물이 스며 들듯 온 몸으로 흡수되는 쾌감이 좀 황하고 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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