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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언제든지 죽어도 좋은 삶의 태도

by 두마리 4 2023. 8. 13.

대학동기 모임을 했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일년에 두 번 만난다. 83학번이다. 명퇴를 한 친구도 있고, 교장인 친구, 장학관인 친구, 그냥 교사인 친구도 있다. 자녀가 결혼한 친구도 있다. 자녀가 아직 유학 등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사는 이야기를 좀 한다. 자녀 이야기, 주식 이야기, 주변 친구나 동료 이야기. 정치 이야기는 하다가 말았다. 진보와 보수가 섞여 있는 까닭이다. 진보만 있거나, 보수만 있으면 좀 신랄하게 정치 이야기를 한다. 섞여 있을 때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런 이야기들로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스스로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떳떳하게 밝히고 그 입장에서 자기 나름의 해석이나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학 동기 모임에서도 그러지 못하니 좀 아쉽기도 하다.

 

화제에 오른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졸업정원제가 떠올랐다. 학과별 또는 계열별로 졸업할 때의 정원을 규정하되 입학할 때는 졸업 정원의 30를 증원 모집하고 증원된 숫자에 해당되는 학생은 강제로 중도 탈락시키도록 제도다. 졸업정원제는 1981년부터 시행되어 1985년 입학정원이 대학 자율에 맡겨지고 1987년에 폐지되었다. 졸업정원제는 성적이 아무리 우수한 편이라도 매학년 진급시 하위 몇 명을 내보내는 방식이다. 엄청나게 폭력적이었다. 남학생이 많은 학과는 중간에 군대 가는 학생들이 많아 대충 조정이 되었다. 여학생이 많은 사범대의 경우 심리적 압박을 받는 학생들이 많았다. 사범대생들은 집안이 가난한 시골 출신들이 많았다. 시골에서 논팔고, 소 팔고 해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중간에 잘리면 그것을 집에 어떻게 이야기하겠는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을 해주는 친구도 교수도 없었다. 군부 독재 시절이라 어느날 갑자기 어떤 학생이 안 보이거나 느닷없이 군대에 끌려가는 일이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다들 시험친다고 정신이 없는데 자취방에서 자살한 학생도 있었다. 체육특기자를 체육과가 아닌 국어나 영어, 수학 등 일반 교과에 배정한 일도 있었다. 기본 점수를 주었지만, 정상적으로 학점을 따기 힘들어 중도에 탈락하기도 했다. 이 학생들은 배정된 학과 공부도 해야 했고, 특기자 자격으로 그 종목의 훈련과 대회 출전도 해야 했다. 그런데 교사 자격은 체육이 아닌 일반 학과로 주고 발령도 그 과목으로 냈다. 말도 안 되게 폭력적이었다. 광주 사태 이야기도 대학교 들어가서 접했다. 대학 4년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한 기억보다, 시위를 열심히 한 기억이 더 많다.

 

국가 공동체를 벗어나서 존재하기 힘들다. 국가 공동체로 인해 생긴 권력을 공정하지 않게 사용하는 인간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일개 자연인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본래 자기 것이 아닌 힘을 자기 것인양 함부로 쓰는 것을 보면 역겹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한 태도는 죽음에 있음을 느낀다. 알렉산더 대왕이 철학자 디오니게네스를 만나서 무엇이든지 도와줄테니 말하라고 하니까, 디오게네스는 햇볕이 필요하니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서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언제든지 죽어도 좋은 자세야말로 가장 훌륭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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