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 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利貞.
몽(蒙)은 형통하다. 내가 동몽(童蒙)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에게 구함이라. 처음 점치면 말해주고 두 번 세 번 하면 모독하는 것이라. 모독하면 알려주지 말지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初六, 發蒙. 利用刑人, 用說桎梏. 以往, 吝.
초육, 덮개를 벗기듯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초기에는 형벌을 가하듯이 엄격하게 하고, 그 다음에 차꼬와 수갑 같은 속박을 벗겨주어야 이로우니, 그대로 가면 부끄러울 것이다.
九二, 包蒙, 吉. 納婦, 吉. 子, 克家.
구이, 어리석음을 감싸주어야 길하고, 지어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도 받아들여야 길하다. 자식이 집안을 다스리듯 하니라.
六三, 勿用取女. 見金夫, 不有躬. 无攸利.
육삼, 여자를 취하지 말아라. 돈 많은 남자를 보고 몸을 두지 못하면,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六四, 困蒙, 吝.
육사, 몽매함이 막혀있어 곤궁하면 비루하고 부끄러우니라.
六五, 童蒙, 吉.
육오, 윗자리에 있으나 동몽을 자처하며 아래에 있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좇으니 길하다.
上九, 擊蒙. 不利爲寇, 利禦寇.
상구, 몽매함을 쳐서 깨우치되, 도둑처럼 하면 이롭지 않고, 도둑을 방비하듯 해야 이로우니라.
몽(蒙)은 덮음, 뒤집어 씀, 입음이다. 어둠이고 어린아이다. 어리고 어둡다면 기르고 깨우쳐야 한다. 몽(蒙)은 어린 어리석음, 깨우침이다. 몽괘(蒙卦䷃)는 산 아래에 물이 있는 형상이다. 아래에 있는 양(陽)이 위에 덮고 있는 산을 밀어내고 올라가는 형상이다. 음의 기운 속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덮여 있는 흙을 뚫고 밝은 지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싹은 어릴 수밖에 없고, 어두워야 싹이 튼다. 따라서 어리고 어두움 그자체는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이다. 니체가 말한 낙타, 사자보다 높은 단계의 어린아이와 상통한다. 니체는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라고 했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처음 시작하면 어리고 어둡다. 주린이, 골린이, 테린이 등의 명명(命名)이 이를 말해준다.
‘내가 동몽(童蒙)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에게 구함이라.’ 자발적인 깨우침이 중요하다. 공자는 학문을 하는 것은 산을 만드는 것과 같은데, 흙 한 삼태기를 붓지 않아 산을 못 이루더라도 내가 중지하는 것이며 평지에 한 삼태기를 붓더라도 나아감은 내가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왕양명은 깨우쳐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一當百)이라고 했다. 초육(初六)의 발몽(發蒙)은 스스로 펴는 것이다. 씨앗의 싹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힘들다고 흙을 걷어내주면 죽는 것과 같다. 자발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게 EBS 강의다. 학생들이 그 강의를 최고로 여기고, 교사마저 그와 같은 강의를 따라하게 만드는 풍조는 이해가 안 되는 면이 많다.
'초육, 덮개를 벗기듯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초기에는 형벌을 가하듯이 엄격하게 하고, 그 다음에 차꼬와 수갑 같은 속박을 벗겨주어야 이로우니, 그대로 가면 부끄러울 것이다.' 물음은 깨우치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이다. 점을 치는 것은 신(神)이나 천지기운에게 물어보고 깨우치고자 함이다. 하브루타는 친구와 짝지어 공부하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학습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구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와 함께 서로 가르치고 토론하고 비교하고 발표하기를 하는데, 무엇을 중심으로 하든 빠지지 않는 것이 질문하기다. 이익은 스승을 만나려면 모름지기 묻기를 좋아해야 하면, 날마다 새롭게 되는 공부는, 오늘 묻기를 좋아하고 내일 묻기를 좋아하여 평생토록 노력하여 자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 된다고 했다. 장자는 충실하게 공부하면 반드시 의문이 생기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곧 의문이라고 했다. 사람한테도 같은 것을 두 번 세 번 물으면 놀리는 게 된다. 교사에게 모욕감을 주는 학생은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 깨우치는 것은 바르게 해야 이롭다. 바르지 않으면 안 깨우치느니 못하다.
‘초기에는 형벌을 가하듯이 엄격하게 하고, 그 다음에 차꼬와 수갑 같은 속박을 벗겨주어야 이롭다.’ 처음에 엄격하게 하여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예의범절과 인성이 몸에 배도록 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엄격함을 풀어줘야 한다. 한두 살 먹은 애가 보들보들한 손으로 뺨을 때린들 그저 귀엽고 즐겁기만 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커서 버릇 없다고 다잡으려고 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 애를 키워보면 공감하게 된다. 어릴 때 엄격하게 키운 애는 커서 요즘 이렇게 참한 젊은이가 있네라는 말을 듣는다. 어릴 때부터 마음대로 풀어서 키운 애가 커서 결혼하면, 결혼식 때 들어온 축의금은 당연히 자기 것이 되어야 한다고 아주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꼴을 보게 된다.
‘구이, 어리석음을 감싸주어야 길하고, 지어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도 받아들여야 길하다. 자식이 집안을 다스리듯 하니라.’ 아랫자리에 있는 이오(二五)가 윗자리에 있는 육오(六五)를 깨우치는 도리를 말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가르치면서 그 윗사람이 멍청하다고 까발리고 떠들어대면 어떻게 될까? 윗사람이 지어미같이 잔소리를 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식이 집안을 다스리듯 윗사람을 깨우쳐 줘야 좋다. 주자는 학문을 집짓기에 비유했다. 모름지기 먼저 몸채를 세우고, 그 다음 속으로 들어가 벽을 만들어 견고하게 한다고 했다. 자식이 어리석은 부모를 모시고 집안을 다스리면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하되 더욱 배려하고 겸손하게 해야 할 것이다.
‘육삼, 여자를 취하지 말아라. 돈 많은 남자를 보고 몸을 두지 못하면,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공부할 때 해로운 것을 말하고 있다. 공부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이로울 게 없고, 공부하는 여자에게 돈 많은 남자는 이로울 게 없다. 조선 후기의 학자 최한기는 가르침을 방해하는 것으로 노래, 여색, 잡기, 부귀와 영달, 문장과 기예, 남을 이기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형태를 들었다.
‘육사, 몽매함이 막혀있어 곤궁하면 비루하고 부끄러우니라.’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막혀있는데도 뚫을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비루하고 부끄럽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공자는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좋을까’ 하고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자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묻지 않는다면 끝내 모를 것이요, 모른다고 생각하여 반드시 알려고 하면 마침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어리석어지고,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하며, 묻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했다. 장자는 어려움을 겪어야 비로소 마음이 형통해진다고 했다. 구양수는 시는 궁핍한 뒤에라야 공교해진다고 했다. 남명 조식은 굶주림 끝에 먹을 것을 얻고 근심 끝에 즐거움을 얻는 셈이니 불우함으로 인해 형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곤궁함은 깨우침의 전제 조건이다.
‘육오, 윗자리에 있으나 동몽(童蒙)을 자처하며 아래에 있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좇으니 길하다.’ 육오(六五)의 동몽(童蒙)은 윗자리 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배울 때 취해야 하는 태도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하게 묻고 깨우치는 자세는 무척 좋다. 장자는 사람들이 대개 노성(老成)해지면 아랫사람에게 물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도를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높은 지위에 있지만 무지하고 편협하고 옹졸한 정치인은 이런 자세가 없어서 그렇다. 주자는 ‘견문이 좁으면서 마음이 넓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매우 좋다고 했다. 또 탁 트여 넓은 가운데 세밀하고, 너그럽고 느슨한 가운데 근엄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구, 몽매함을 쳐서 깨우치되, 도둑처럼 하면 이롭지 않고, 도둑을 방비하듯 해야 이로우니라.’ 쳐서 깨우치는 것, 도둑처럼 하는 것, 도둑을 방비하듯 하는 것.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발몽(發蒙), 포몽(包蒙), 곤몽(困蒙), 동몽(童蒙), 격몽(擊蒙), 여기는 없지만 훈몽(訓蒙), 계몽(啓蒙). 펴게 하고, 감싸고, 곤궁하게 하고, 어린아이처럼 하고, 부딪치게 하고, 가르치고, 열리게 하고… 모두 깨우치는 방법이다. 격몽은 사전적으로는 발몽, 훈몽, 계몽과 구분이 잘 안 되지만, 부딪쳐서 깨우치는 것이리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갑작스런 자극을 주는 방법인 것 같다.
깨우침을 도둑처럼 하는 것과 도둑을 방비하듯 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자가 말한 비유가 여기에 맞지 않을까? 내가 무척 좋아하는 비유이고, 여러 번 써 먹었다. 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아직 학문에 입문하지 못한 상태라면 다그쳐 공부해서도 안되고 쉬엄쉬엄 공부해서도 안된다. 이는 비유컨대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 닭이 알을 품고 있지만 뭐 그리 따뜻하겠는가. 그러나 늘 품고 있기 때문에 알이 부화되는 것이다. 만일 끓는 물로 알을 뜨겁게 한다면 알은 죽고 말 것이며, 품는 것을 잠시라도 멈춘다면 알은 식고 말 것이다.”
도둑처럼 하는 것은 다그치거나 알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도둑을 방비하듯 하는 것은 미지근하지만 늘 품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산수몽괘(䷃)를 말아서 뒤집어 놓은 종괘(綜卦, 도전괘倒顚卦)는 수뢰둔(水雷屯䷂)이다. 혼돈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어려움을 잘 견뎌야, 어리고 어둠 단계에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산수몽괘(䷃)에서 음양을 바꾼 착괘(錯卦,배합괘配合卦)는 택화혁(澤火革䷰)이다. 어리고 어둠에서 깨우침을 얻어 자라나는 것은 혁명과도 같다. 깨우침은 짐승의 피부를 벗겨서 무두질하여 전혀 새로운 물질의 가죽을 만드는 것이다. 깨우침은 문명이다. 산수몽에서 음양을 바꾸고 말아서 뒤집은 착종괘(錯綜卦)는 화풍정(火風鼎䷱)이다. 깨우침은 지속적인 추이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큰 변혁을 계속 이뤄내는 것이고, 공동체 살림의 주도권을 쥐는 일과 관련된다. 산수몽이 부모괘는 풍지관(風地觀䷓), 지택림(地澤臨䷒)이다. 몽매함을 깨우치려면 근본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관측하고 그를 바탕으로 예상하고 상상해야 한다. 사물에 접근하려 하고 위로 성장하려고 해야 한다. 산수몽괘에서 겉효를 떼고 속효(2,3,4/3,4,5)로 재구성한 호괘(互卦)는 지뢰복(地雷復䷗)이다. 깨우침은 터닝 포인트이고 절망 속에서 희망이 싹트는 생의 약동이다. 산수몽괘의 소성괘이 상하를 바꾼 역위생괘(易位生卦)는 수산건(水山蹇䷦)이다. 좀 어렵고 궁핍하고 절뚝거리듯이 고통스러워야 깨우침이 일어난다.
<참고 문헌>
[주역전해], 김경방 여소강, 심산
[도올주역강해], 도올 김용옥, 통나무
[대산주역강해], 대산 김석진, 대유학당
[선인들의 공부법], 박희병 편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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