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사냥, 인간 사냥]
천 년을 더 살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잘려나간 팔다리가 본래 상태로 재생되고, 병의 치유 속도로 놀라울 정도로 빠른 약이 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인어 사냥』(차인표)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약이다. 인어를 삶아 나온 기름이다.
인어는 없지만 현재 인간 사회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인어 사냥’은 ‘인간 사냥’을 비유하는 말이 아닐까. 노화를 방지하고 피부를 재생하는 여러 가지 약품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다. 배양한 줄기 세포를 몸에 주입해서 젊음을 유지하기도 한다. 부실한 자신의 장기(臟器)를 떼어내고 다른 사람의 것을 이식하여 대체하기도 한다. 불법으로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장기를 적출하고 매매하는 일까지 일어난다. 이런 것과 관련된 미래, 복제 인간을 보여주는 ‘아일랜드’라는 영화도 있다.
덕무와 공영감이 어미 인어를 유인하여 잡기 위해 새끼 인어 남매를 잡아 광에 가두어 둔다. 이때 덕무의 딸과 아들인 영실과 영득은 새끼 인어들과 친해진다. 그러자 공영감은 인어는 사람을 닮았을 뿐, 물고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 노예로 삼고 물건처럼 매매를 할 때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흑인만이 아니라, 북미나 남미, 호주 등의 원주민이나 그들이 식민 지배했던 동아시아 사람들에 대해서 같은 인간이라고 여겼을까. 자신들과 좀 닮았을 뿐 인간은 아니니까, 다른 동물과 같이 사냥하고 길들여 부리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 나라에 살고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자본을 갖고 있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까. 많이 닮았지만 같은 인간이 아니니, 진정한 연민이나 나눔ㆍ배려는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층민이 가난으로 굶어죽든 상관없이 자신의 부유함을 누리면서, 각종 미용과 의술의 힘으로 젊음을 유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인어 사냥』을 읽으면서,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영생(永生)ㆍ젊음ㆍ재물에 대한 탐욕을 본다. 성형과 미용 시술, 각종 생명 연장 의술을 본다. 물과 공기, 숲, 토양 등의 자정(自淨)과 회복 능력을 뛰어넘어 끝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자신보다 약한 자를 유린하는 인간의 욕망을 본다.
균형미가 돋보이고 라임이 느껴지는 대칭 구조의 문장을 보는 재미도 있다. “호리하니 가녀린 몸에 동그스름한 얼굴이 예쁜 딸은 영실이라 불렀고,/ 가을 바다에 올라온 꼴뚜기마냥 마름모꼴 얼굴에 큰 눈을 갖고 태어난 아들은 영득이라 불렀다. 섬의 낮은 평온했고,/ 밤은 고즈넉했다.” “동해안 어부들은 강치를 마구 죽여 씨를 말리는 일본인들에게 비분했다. 동시에 그들의 만행을 제지할 힘도, 의지도 없는 대한제국 관리들의 모습에 강개했다.”
인어 이야기를 통해 인간 탐욕의 잔인성을 느끼게 하는 발상이 인상적이다. 영랑호에 관련된 전설과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장생약을 찾으로 왔었다는 서복의 이야기를 인어 이야기와 연결시키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제주도에 서복공원과 서복기념관이 있다. 제주도는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이고,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한반도 지배 증거와 동남공정의 실마리로 활용한다. 시작부터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여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인어 사냥』(차인표)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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