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건괘(重天乾卦䷀) (2) 용(龍) 되다
初九, 潛龍勿用(초구, 잠용물용) 초구는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구이, 현룡재전, 이견대인)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九三,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구삼, 군자 종일건건 석척약 려 무구) 구삼은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쓰다가 저녁이 되어 편안히 쉬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
九四, 或躍在淵, 无咎(구사, 혹약재연, 무구) 구사는 혹 뛰어오르거나 연못에 있으면 허물일 없을 것이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구오, 비룡재천, 이견대인)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면 이로울 것이다.
上九, 亢龍有悔(상구, 항룡유회) 상구는 높이 오른 용이니 후회가 있다.
잠겨 있는 잠룡, 나타난 현룡, 두려워하는 척룡, 뛰어오르는 약룡, 나는 비룡, 높이 오른 항룡 . 여섯 효는 모두 용으로 상징되고 있다. 건(乾☰)은 하늘ㆍ말ㆍ머리ㆍ아버지ㆍ임금 등을 상징하는데, 하필 왜 용일까? 건괘(乾卦䷀)는 천체가 규칙적으로 운행하여 영원히 그치지 않으며 어떤 힘으로도 저지하거나 바꿀 수 없는 강건함이다. 올라가고 내려옴이 있으며, 위와 아래가 있으며, 크고 작음이 있으며, 잠기고 드러남이 있으며, 뛰어오름과 날아감이 있으니 융통성이 있고 변화가 많다. 구체적인 한계가 있는 사물로 상징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잠기고 나타나고 뛰고 날고 하면서 신비하고 초월적인 존재여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생명체 자체는 창조하지 못한다. 애니미즘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ㆍ생명적인 것이 있으며, 자연계의 여러 현상도 영적ㆍ생명적인 것의 작용으로 보는 세계관 또는 원시 신앙이다. 모든 사물과 여러 현상을 모두 신(神)이 만드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모두 신(神)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현신(現身)하거나 신령(神靈)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용(龍)은 천체의 기운이면서 일종의 신(神)이다.
‘초구는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 초구는 맨 밑이다. 처음이고 시작이다. 미약하고 어린 때이다. 잠겨 있고 숨어 있고 피해 있는 모습이다. 어린 때라면 조급히 움직이지 말고 힘을 길러야 한다. 학문과 수양을 쌓아야 한다. 은둔하는 현자라면 남이 옳다고 보아도 주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으며, 즐거우면 행하고 걱정되면 하지 않은다. 초구가 움직이면 천풍구괘(天風姤卦)가 된다. 구(姤)는 ‘만남’이다. 하지만 초구는 조용히 있어야 길하고 가는 바가 있으면 흉함을 당한다고 나온다.
요즘은 어리더라도 쓴다. 가수, 운동 선수 등 재능과 실력이 좋으면 어리더라도 성인들과 경쟁을 하고 돈을 번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뽑아 쓰면 나중에 좋을 것 같지 않은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되는 일이라면 나이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양기(陽氣)의 싹이 터 이미 지상으로 올라온 때다. 자신의 능력과 포부를 세상에 크게 펼치는 때이다. 이러한 때에 현인(賢人)이나 대인(大人)을 만나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 수 있다. 구이가 움직이면 천화동인괘(天火同人卦䷌)가 된다. 동인(同人)은 함께 하는 뜻이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과 상통한다.
‘구삼은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쓰다가 저녁이 되어 편안히 쉬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 종일토록 힘쓰고 힘쓰는 것은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이다. 하루 종일 힘썼으면 저녁이 되면 마땅히 편안하게 쉬어야 한다. 그럼에도 위태롭다는 것은 쉬더라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완전히 놓지 않아야 허물은 없다는 뜻이다. 열심히 하였더라도 반성할 점이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내일 할 일을 걱정할 부분이 있다. 구삼이 움직이면 천택리괘(天澤履卦䷉)가 된다. 리(履)는 이행, 실천이다. 이행은 쉬지 않고 힘쓰되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
‘구사는 혹 뛰어오르거나 연못에 있으면 허물일 없을 것이다’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며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 자리이고 때이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판단하여 나아가거나 물러나면 허물이 없다. 구사가 움직이면 풍천소축괘(風天小畜卦䷈)가 된다. 소축(小畜)은 작은 축적이다. 멈추고 작게 쌓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면 이로울 것이다’ 구오는 중정하며 순수함이 지극하고 강건하다. 덕과 지위가 높다. 군주의 자리이다. 용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어떤 어려움에 대해서도 자유자재로 대처할 수 있다. 보통사람도 대인을 만나면 이롭고 군주도 대인을 만나 천하를 다스리면 이롭다. 구오가 움직이면 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가 된다. 대유(大有)는 재물이나 문명이 크게 있는 모습이니 비룡(飛龍)과 상통한다.
‘상구는 높이 오른 용이니 후회가 있다’ 상구는 마지막 효이다. 자리도 끝이고 일도 끝나는 때이다. 가장 높이 올랐으니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지만 나쁜 것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극도로 좋으면 장차 나쁘게 변하게 된다. 상구가 움직이면 택천쾌괘(澤天夬卦䷪)다. 쾌(夬)는 ‘결단’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결단이 중요하다. 활시위를 당길 것인가 말것인가, 당긴 활시위를 놓을 것인가 말것인가.
높이 오르면 후회한다고 해서 잠겨 있고만 싶을까. 밭에만 어슬렁거리다 끝내고 싶을까. 뛰어 올라 등용(登龍)되기만 하면 족할까. 뛰면 날고 싶고 날면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다. 잠겨 있으면서 역량을 쌓고 기르고 있다가, 들판에 나와 역량을 드러내면서, 쉼없이 힘쓰고 힘쓰고 하다가, 조금 도약했다가 그 자리에 머물렀다 하면서 때를 보다가, 날아 올라, 가장 높이 날아 올라 마지막엔 후회하면서 끝내는 게 인생이 아닐까. 높이 오른 인간이 추락할 때 날개가 없어 추락의 충격은 크겠지만, 떨어져 죽더라도 가장 높이 날아올라보고 싶은 욕망이 인간의 숙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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