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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감자 산곶

by 두마리 4 2023. 5. 4.

[감자 산곶]

 

여름날 오후, 산골 아이들은 소 먹이러 가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소 먹이러 가지 않는 날은 소를 부리는 날이다. 그런 날은 부모님 따라 논밭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소를 고되게 부릴 때는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소가 잘 먹는 풀들만 베어서 줘야 했다.

 

소가 며칠 동안 힘든 일이 계속 하면 좋아하는 풀도 먹지 않는다. 소는 다치거나 탈이 생기면 다 나을 때까지 단식을 한다. 수의사가 없던 시절이다. 본능일 것이다. 배탈이 났을 때 다 나을 때까지 굶는데 안 나을 리가 없다. 외부에 상처가 생겼을 때도 소는 굶었다. 나중에 단식에 관심이 생겨 찾아 보니,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굶으면 인간의 생체 기능이 탈이 생기거나 상처가 난 데 집중되어 빨리 낫는다고 한다. 단식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가 굶는 것을 보고 단식의 원리를 깨달았다.

 

모내기 철에는 소가 아무리 힘들어도 부리지 않을 수 없다. 소가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급한 처방으로 소주를 먹였다. 소 혀를 손으로 잡고 25도 짜리 소주 됫병을 원샷을 시켰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러면 혈액을 순환되어 활력을 회복하곤 했다. 소주 한 되를 한 번에 다 마셔도 소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여름에는 물도 한 번에 한두 바께쓰를 예사로 마신다.

 

소 먹이러 갈 때는 산으로 갔다. 아래산박(삼밭?), 윗산박골, 호박골, 실여들, 갈바래기(갈밭), 중산골……. 다시 떠올려보니 정겨운 이름이다. 온 동네 아이들이 자기 소를 몰고 산으로 간다. 어떤 때는 두 곳, 세 곳으로 나뉘어 갈 때도 있었다. 자주 가는 데가 몇 군데 있었고, 그곳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터가 좋았다. 마을에서 멀지 않았다. 자주 가니 소들이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은 적어 어른들은 다른 데 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놀기 좋은 곳을 선호했다. 소를 풀어놓을 수 있는 산에 도착하면 고삐를 뿔에다 돌려 감고 풀리지 않도록 묶은 다음 소를 산에 풀어놓는다. 그러면 소들은 한나절 내도록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는다. 아이들은 놀다가 해가 질 때쯤 되면 자기 소를 찾아서 고삐를 풀어서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

 

소를 풀어놓고 난 다음에 아이들은 모여서 한나절 동안 논다. 보통 여자애들은 공기놀이(깔매)를 많이 한다. 남자 아이들은 언덕이나 벼랑을 타고 다니거나 감자 산곶을 한다. 감자 산곶은 솥 없이 감자를 쪄 먹는 방법이다. 감자는 구워먹는 것이 더 맛있지만, 감자 산곶은 그 과정이 재미 있다.

 

감자 산곶을 할 때는 먼저 역할 분담을 한다. 몇 명은 마을에 내려가서 소 먹이러 온 아이들의 집에 가서 감자를 몇 개씩 거둬온다. 감자를 가지러 마을에 내려온 아이들은 냇물에 가서 멱을 한 번 감고 올라가기도 한다. 산에 남은 아이들은 땔감을 구해오는 아이, 아궁이를 만드는 아이, 아궁이를 만들고 아궁이 위에 올릴 자갈을 주워오는 아이, 진흙을 개는 아이, 감자를 넣는 시루와 아궁이를 덮을 덮개를 나뭇잎으로 엮는 아이 등으로 분담하여 일을 하기 시작한다.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는 먼저 굵은 돌로 전체 구조를 만들고 그 다음에 자갈을 수북하게 쌓는다. 아궁이 뒤쪽으로는 좁은 통로를 판다. 그 통로 끝에는 네모 나게 널찍하게 파고 아래쪽에 나뭇가지를 걸쳐 감자를 얹어 찔 시루를 만든다.

 

아궁이 위에 쌓은 자갈들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불을 땐다. 자갈이 뜨겁게 달아올랐는지 물을 튀겨 보고 충분하다 싶으면 아궁이에서 불을 빼낸다. 그 다음에 나뭇잎 덮개로 덮고, 진흙 반죽으로 김이 안 새도록 밀봉한다. 아궁이 뒤쪽에 파놓은 감자 시루에 감자를 넣고, 그 위에도 나뭇잎 덮개로 덮고 진흙 반죽으로 김이 새지 않도록 쳐바른다.

 

그 다음에는 한 아이는 나무 꼬챙이를 준비하고 두어 명은 물을 준비한다. 나머지 아이들은 진흙 반죽을 양손에 들고 거의 전투 태세를 갖춘다. 진흙으로 밀봉한 아궁이 자갈 위를 나무 꼬챙이로 찌르면 그 구멍에다 물을 붓고 재빨리 진흙 반죽으로 틀어막는다. 그러면 달아오른 자갈에 부은 물은 뜨거운 김이 되어 아궁이 뒤쪽 통로를 거쳐 감자를 넣어 놓은 시루 쪽으로 올라간다. 이때 어느 쪽에서 김이 새어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은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다가 김이 새는 곳이 있으면 진흙 반죽으로 쳐막는다. 가장자리부터 꼬챙이로 찌르고 물을 붓고 진흙으로 틀어막는다. 맨 나중에는 가장 중앙에 큰 구멍을 내고 물을 많이 붓는다. 이곳에 물을 부으면 거의 물이 뜨거운 자갈을 만나 내는 소리가 천둥 우레가 치는 소리와 흡사하다. 이때는 모든 아이들이 더욱 긴장해야 한다. 발생한 뜨거운 증기가 밀봉한 진흙 반죽을 화산처럼 터뜨리며 분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서둘러 진흙 반죽으로 쳐발라 틀어막는다. 뜨거운 김은 오로지 아궁이 뒤쪽의 통로를 통하여 감자 시루 쪽으로 가게 해야 한다.

 

뜨거운 증기 만들기 과정이 모두 끝나면 진흙 반죽으로 모든 곳을 밀봉한 상태에서 감자가 익을 시간 동안 기다린다. 충분한 시간이 지났을 때 감자 한 알을 꺼내어 편편한 바위 면에다 힘껏 던진다. 익은 감자가 파삭 으깨지면서 분이 나면, 이 날의 감자 산곶은 대성공이다. 여자 아이들도 불러서 모두가 감자를 맛있게 나눠 먹으면 어느덧 해는 서산에 지고 있었다.

 

<후기>

국어사전이나 인터넷에 검색해보다 감자 산곶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영월 감자 산곶 체험이 검색된다. 이것을 돌을 불에 달구어 그 돌과 감자를 함께 묻어 익혀 먹는 방법이다. 어떤 유튜브에서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밤, 고구마, 돼지고기까지 같이 넣어 익혀 먹는 동영상을 본 것 같은데 다시 찾아보니 검색이 잘 안 된다. 정확한 명칭도 알 수 없다. 감자 산골인지, 감자 삶곶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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