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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고삐

by 두마리 4 2023. 5. 3.

[고삐]

 

과거는 흘러갔다. 아니, 흘러가버린 것이 과거다.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만큼 의미가 명료한 것은 없다. 현재는 진행 중이고, 미래는 닥치지 않아서 모르거나 어찌할 수 없다. 나의 과거를 부정하면 현재와 미래의 나도 부정된다. 지나가버린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거나 미래를 좌우하는 고삐가 될 수도 있다.

 

고삐는 이제 거의 흔적만 남은 과거의 말이다. 고삐는 말이나 소를 몰거나 부리려고 재갈이나 코뚜레, 굴레에 잡아매는 줄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말에게는 재갈을 물리고, 소한테는 코뚜레를 꿰었다. 말은 보기 힘들었고, 소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코뚜레는 소의 코청을 꿰뚫어 끼는 나무 고리다. 노간주 나무를 많이 썼다. 닳거나 부러지는 경우를 대비해서 적당한 굵기의 노간주 나무를 불에 구워 둥글게 구부리고 묶어서 처마 밑에 여러 개를 걸어두곤 했다.

 

소는 힘이 세다. 특히 수컷인 황소는 코뚜레에 잡아맨 고삐를 잡아당겨도 사람을 끌고 가버려 거의 조종이 안 된다. 농촌에서 키우고 길들이는 소는 암소다. 경운기나 트랙터가 나오기 전에는 소가 없으면 농사 짓기가 어려웠다. 논밭을 갈거나 수레를 끌 때 소를 썼고, 그것을 모두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농사용으로 부릴 소는 중송아지가 되면 코뚜레를 꿰어 고삐를 잡아매어 길을 들인다. 소가 길이 잘들여져야 농사일을 할 때 편하다. 흔히 소는 주인 심성을 닮는다고 했다. 주인이 괴팍한 집에는 그 소도 괴팍했고, 주인이 성실하면 소도 성실했다. 주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소를 길들이기 때문이리라.

 

코뚜레에 잡아맨 고삐는 뿔 사이로 넘겨 목 굴레 안을 통과하여 소 뒤 몇 발자국 거리까지 온다. 그 고삐를 잡고 소를 몰거나 부린다. 소가 제맘대로 뛰거나 달아나려 하면 주인은 고삐를 잡아당긴다. 그러면 소는 코뚜레가 당겨서 머리가 제껴지고 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고삐로 때리거나 잡아당기면서 출발, 중지, 우회전, 좌회전 등의 신호를 준다. 이때 이랴’, ‘어데’, ‘등의 말도 같이 한다. 이런 말들은 지방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 길을 잘 들인 소는 거의 자동이다. 어찌보면 경운기나 트랙터보다 나은 면이 있다. 소도 유정물(有情物)이라 오랫동안 같이 지낸 주인과 소 사이에는 공감적인 친밀도(라포르)가 형성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천천히 속도 조절을 하고, 소가 말하지 않아도 주인은 휴식을 준다. 일을 끝나 멍에를 벗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소가 신이 나서 주인을 끌고가다시피 한다.

 

과거는 현재나 미래의 고삐가 되기도 한다. 연인들끼리는 스스로 원해서 고삐를 매고, 그 고삐를 죄거나 느슨하게 하는 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를 때의 구속(拘束)은 아름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고삐가 되는 경우도 많다. 국가 간에도 코뚜레를 채우고 고삐를 잡는 국가와 잡히는 국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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