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부가 당나귀를 몰고 산길을 지나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그의 당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다 절벽 끝자락에 서게 되었다. 이것을 본 마부가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 거야, 이 바보 같은 녀석! 거긴 낭떠러지란 말이야!” 마부는 당나귀의 꼬리를 붙잡고 그곳에서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당나귀는 발버둥을 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다가 힘을 다 쏟고만 마부가 붙들고 있던 당나귀의 꼬리를 놓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좋아! 그럼 계속 가봐. 네가 이겼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멈춰야 할 때 멈춰야 하는 교훈을 주기 위한 우화다. 우화에서는 당나귀가 멈춰야 하는 상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절벽이 앞에 있다. 그 이유도 명확하다. 멈추진 않으면 죽는다. 인간의 삶에서는 간단하지 않다. 어리석어서 멈춰야 하는 상황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또는 멈춰야 하는 줄 알면서도 욕심 때문에 그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주역의 52번째 중산간괘(重山艮卦䷳)는 멈춤과 그침의 때를 말하고 있다. 간(艮)은 어긋나다, 거스르다, 그치다의 뜻이다. 어떤 일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어긋나거나 거스르게 되면 그쳐야 한다. 간괘(艮卦☶)는 산의 모양이다. 두 개의 음효 위에 하나의 양효가 가로막아서 산처럼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산처럼 우뚝 서서 가로 막으면 일단 멈추어야 한다. 멈추어서 산을 넘어가고 싶으면 그럴 능력이 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산을 넘을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그래서 멈춤은 양육과 공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방이 가로막힌 첩첩산중에서 수양(修養)을 하는 이유가 있다.
멈춤과 나아감은 대칭이다. 나아감 없이 멈춤이 없고, 멈춤 없이 나아감은 없다. 나아가기 위해 멈춰야 한다. 펴기 위해 구부리는 것과 같다. 힘차게 펴기 위해서 웅크릴 때 힘을 모아야 한다. 힘차게 나아가기 위해 멈춰서 힘을 모아야 한다. 접는 것의 의미는 펴는 것에 있고, 펴는 것의 의미는 접는 데에 있다. 멈춤은 나아감에 의미가 있고, 나아감은 멈춤에 의미가 있다.
어떤 일을 그만두고 멈춘다는 것은 하던 일을 중지하거나 다른 일을 하기 위함이다. 또는 하던 일을 계속하거나 더 잘하기 위해 멈추기도 한다. 멈춤은 휴식이고 재충전이고 전환이다. 잘 멈추어야 잘 나아갈 수 있다.
적절하게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때는 발꿈치에서 멈춰야 한다. 어떤 때는 장딴지에서 멈춰야 한다. 어떤 때는 한계까지 다다라 멈춰야 한다. 어떤 때는 몸에서 멈춰야 한다. 어떤 때는 볼이나 입에서 멈춰야 한다. 어떤 때는 독실하게 멈춰야 한다. 적절한 때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나 자신과 타자의 상황에 따라 멈춰야 하는 적절한 때는 달라진다.
욕망을 자제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보이지 않는 등에서 멈춰야 한다. 보면 멈추지 못할 것 같으면 같은 뜰에 거니는 것과 같이 가까이 있어도 아예 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허물이 없다.
별별챌린지 8기 4일차 (공백포함 1,43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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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중산간괘(重山艮卦䷳)
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간기배 불획기신 행기정 불견기인 무구)
彖曰 艮止也 時止則止 時行則行 動靜不失其時 其道光明(단왈 간지야 시지즉지 시행즉행 동정불실기지 기도광명)
艮其背 止其所也 上下 敵應不相與也 是以不獲其身行其庭 不見其人无咎也(상하 적응 불상여야 시이불획기신행기정불견기인무구야)
象曰 兼山 艮 君子 以 思不出其位(상왈 겸산 간 군자 이 사불출기위)
-정이천
등에서 멈추면 몸을 얻지 못하며 뜰에 가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다.
「단전」에서 말했다. 간은 멈춤이니, 그쳐야 할 때 그치고 가야 할 때 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으니, 그 도가 밝게 드러난다. 그쳐야 할 곳에서 멈춤은 제자리에 멈추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대적하되 호응하여, 서로 간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몸을 가지지 못하며 뜰에 가면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상전」에서 말했다. 산이 겹쳐진 것이 간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사려하는 데에 그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김경방
등에 그치면 몸을 보지 못하며 뜰에 가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단전」에서 말하기를, 간은 그침이다. 그쳐야 할 때 그치고 가야 할 때에 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때를 잃지 않으니 그 도가 광명하다. 그쳐야 할 때 그친다는 것은 제자리에 그치는 것이다. 위아래가 서로 적응(敵應)하여 서로 함께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몸을 보지 못하며 뜰에 가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대상」에서 말하기를, 산이 겹친 것이 간괘이니, 군자가 <간괘의 상을> 보고서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쑨 잉퀘이
등에서 멈추니 자신을 보지 못하고, 뜰을 걸으면서 상대와 등져서 그 사람도 보지 못하니, 허물이 없다.
「단전」에서 말한다. ‘간’은 멈춤의 뜻이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가야 할 때면 가서, 가고 멈춤이 모두 때를 놓치지 않으면 멈춤의 도가 절로 찬란히 빛날 것이다.
「상전」에서 말한다. 두 산이 나란히 서 있음은 멈춤을 상징한다. 군자는 그것을 보고 생각을 적절한 데서 멈추어 본래의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김석진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다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
「단전」에 이르기를, 간은 그침이니, 때가 그칠 때면 그치고, 때가 행할 때면 행하여, 움직이고 그침에 그 때를 잃지 아니함이 그 도가 빛나고 밝은 것이니, ‘그 등에 그침’은 그쳐야 할 곳에 그치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서로 적응(敵應)하여 서로 더불지 못하니, 이로써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행하여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음’이 된다.
「대상전」에 이르기를, 산이 아울러 있는 것이 간이니, 군자가 본받아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初六 艮其趾 无咎 利永貞(초육 간기지 무구 이영정)
象曰 艮其趾 未失正也(상왈 간기지 미실정야)
-정이천
초육효는 발꿈치에서 멈추는 것이라 허물이 없으니, 오래도록 올바름을 유지하는 것이 이롭다.
「상전」에서 말했다. 발꿈치에서 멈추는 것은 올바름을 잃지 않는 것이다.
-김경방
초육은 발에 그쳐서 허물이 없으니 끝까지 굳게 지키면 이롭다.
「소상」에서 말하기를, ‘발에 그친다’는 것은 아직 정(正)을 잃지 않은 것이다.
-쑨 잉퀘이
초육: 발에서 멈추니 화가 없으나, 길이 정도를 지킴이 이롭다.
「상전」에서 말한다. 그 발에서 멈춘다는 것은 초육이 정도를 잃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김석진
초육은 그 발꿈치에 그치기 때문에 허물이 없으니, 길이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상전」에 이르기를, ‘발꿈치에 그침’은 바름을 잃지 아니한 것이다.
六二 艮其腓 不拯其隨 其心不快(육이 간기비 부증기수 기심불쾌)
象曰 不拯其隨 未退聽也(상왈 부증기수 미퇴청야)
-정이천
육이효는 장딴지에 멈추는 것이니, 구제하지 못하고 따르게 되어 그 마음이 불쾌하다.
「상전」에서 말했다. 구제하지 못하고 따르는 것은 윗사람이 물러나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경방
육이는 장딴지에 그쳐서 구제하지 못하고 따르니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
「소상」에서 말하기를, ‘구제하지 못하고 따른다’는 것은 아래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쑨 잉퀘이
육이: 장딴지에서 멈추어 다른 사람을 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사람을 따라서 가고 멈추니 자연히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
「상전」에서 말한다. 육이가 다른 사람을 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사람을 따라서 가고 멈추는 것은 그 사람이 육이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김석진
육이는 그 장딴지에 그침이니, 그 따르는 이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유쾌하지 아니하도다.
「상전」에 이르기를, ‘그 따르는 자를 구원하지 못함’은 윗사람이 물러나서 듣지 않기 때문이다.
九三 艮其限 列其夤 厲薰心(구삼 간기한 열기인 려훈심)
象曰 艮其限 危薰心也(상왈 간기한 위훈심야)
-정이천
구삼효는 한계에 멈추는 것으로서, 등뼈를 벌려놓은 것이니,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
「상전」에서 말했다. 경계에서 멈추어서,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
-김경방
구삼은 허리에 그쳐서 등뼈를 갈라놓으니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
「소상」에서 말하기를, 허리에서 그쳐서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우는 것이다.
-쑨 잉퀘이
구삼: 허리에서 멈추어 상체와 하체의 연결을 끊으니 그 위험이 마음을 태우는 듯하다.
「상전」에서 말한다. 허리에서 멈춘다는 것은 지금 구삼에게 닥친 위험이 마음을 태우는 듯하다.
-김석진
구삼은 그 허리에 그쳤기 때문에 그 팔뚝을(등뼈를) 벌림이니, 위태하여 마음을 태우도다.
「상전」에 이르기를, 그 허리에 그쳤기 때문에 위태로움에 마음을 태우는 것이다.
六四 艮其身 无咎(육사 간기신 무구)
象曰 艮其身 止諸躬也(상왈 간기신 지제궁야)
-정이천
육사효는 몸에서 멈추는 것이니,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했다. 몸에서 멈추는 것이란 자신에게서만 그치는 것이다.
-김경방
육사는 몸에 그침이니 허물이 없다.
「소상」에서 말하기를, ‘몸에 그친다’는 것은 몸에 그치는 것이다.
-쑨 잉퀘이
육사: 몸에서 멈추어 함부로 움직이지 않게 하니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 말한다. 몸에서 멈추어 함부로 움직이지 않게 한다는 것은 육사가 스스로 자신을 억제하여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음을 말한다.
-김석진
육사는 그 몸에 그침이니 허물이 없느니라.
「상전」에 이르기를, ‘그 몸에 그침’은 그 몸에 그침이라.
六五 艮其輔 言有序 悔亡(육오 간기보 언유서 회망)
象曰 艮其輔 以中 正也(상왈 간기보 이중 정야)
-정이천
육오효는 광대뼈에서 그쳐서, 말에는 순서가 있으니, 후회가 없어진다.
「상전」에서 말했다. 광대뼈에서 멈추는 것은 중도를 얻어 바르기 때문이다.
-김경방
육오는 입에 그쳐서 말에 순서가 있으니 후회가 없어질 것이다.
「소상」에서 말하기를, ‘입에 그친다’는 것은 중하기 때문이다.
-쑨 잉퀘이
육오: 입에서 멈추어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하여 말에 조리가 있으니, 회한이 저절로 사라지도다.
「상전」에서 말한다. 육오가 자신의 입에서 멈춰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그가 중화의 덕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김석진
육오는 그 볼에 그침이라. 말이 차례가 있음이니 후회가 없으리라.
「상전」에 이르기를, ‘그 볼에 그침’은 중으로써 바름이라.
上九 敦艮吉(상구 돈간길)
象曰 敦艮之吉 以厚終也(상왈 돈간지길 이후종야)
-정이천
상구효는 독실하게 멈추는 것이니 길하다.
「상전」에서 말했다. 독실하게 멈추는 것이 길한 것은 끝까지 믿음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김경방
상구는 돈후하게 그침이니 길하다.
「소상」에서 말하기를, ‘돈후하게 그쳐서 길하다’는 것은 두터움으로써 마치기 때문이다.
-쑨 잉퀘이
상구: 멈춤을 더욱 돈독하게 하니 상서롭다.
「상전」에서 말한다. 멈춤을 더욱 돈독하게 하니 상서롭다는 것은 상구가 돈후한 품성을 갖추고 있어 끝까지 멈출 수 있음을 말한다.
-김석진
상구는 돈독하게 그침이니 길하니라.
「상전」에 이르기를, ‘돈독하게 그침이 길함’은 마침을 두텁게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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