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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찬란한 멸종

by 두마리 4 2024. 10. 24.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이 생길 때마다 우울함을 피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의 노력으로 탄소 농도를 낮추기는 역부족이다. 한 개인이 기상 이변을 걱정한다는 것은 기우(杞憂)처럼 무의미하고 허망하다.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말라죽어가는 소나무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초탈하기는 힘들다.

 

이정모의 찬란한 멸종을 보면 좀 초연해진다. 46억 년 동안에 지구에서 일어난 대멸종에 대해서 역순으로 말하고 있다. 46억 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지금보다 훨씬 더 더웠던 적도 있었고, 더 추웠던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생물들의 대규모 멸종은 일어났지만, 지구는 멀쩡하다.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지구는 멀쩡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정 능력을 회복할 것이고, 다른 생명체가 출현할 것이다.

 

현재 탄소 농도가 높아진 것은 인간의 문명화로 인한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저자는 이를 해결할 기술과 능력을 인류가 95퍼센트 이상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숲을 더 늘리고, 탄소를 포집하는 방법이다. 결국 비용과 자본이 문제다. 그래도 이 방법이 다른 행성을 찾아 인간이 생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효율적이다.

 

46억 년 동안에 일어난 기온 변화와 대멸종의 역사를 보면, 앞으로 예측되는 인류 멸종에 대해서도 좀 초연해진다. 그 역사 속에서 보면 내가 아무리 인류 중의 한 명일지라도 한 개인의 생멸과 인류라는 종 전체의 멸망도 한 줌의 티끌과 같을 수밖에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고, 초연하든 초연하지 않으나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초연한 것이 좋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가능하다.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은 죽음이다. 죽은 듯이 살도록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찬란할 수 있는 죽음을 구질구질하게 만든다. 한 개체의 죽음이 찬란하다면 한 종의 멸망도 찬란해야 마땅하다. 그 멸종 속에 내가, 아니면 나의 자손이 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더욱 죽고 싶도록 아찔한 찬란함을 몰고 온다.

 

-찬란한 멸종(이정모)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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