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사몽(非夢似夢)]
어느날 그놈이 만나지 말자고 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만나자고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보고싶다 문자 해도 씹었다
깜짝 놀라 볼을 꼬집어 보니 아프지 않았다
꿈이었다, 차라리 잘 됐다
그놈을 생각하는 데 그놈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놈을 생각하고 싶을 때 어디서나 그놈을 마음대로 생각했다
그놈을 그리워하는 데 그놈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놈을 그리워하고 싶을 때 어디서나 그놈을 그리워했다
위대하구나 간편하구나
빛보다 빠르구나, 짝사랑!
언제 어디서나 그놈을 마음대로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걸
그놈은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고소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맘대로 생각하고
맘대로 그리워하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꿈속에서 그놈을 만나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먼저 꿈 꾸는 연습을 했다, 하루 이틀 사흘
겨우 꿈을 마음대로 꾸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꿈 속에서 꿈이라는 알아차린 다음에도 깨지 않는 연습을 했다
번번이 알아차리자마자 꿈에서 깨버렸다
하루 이틀 사흘...정신없이 자는 게 아니라
자면서 정신을 차리고, 꿈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꿈이니까 죽어도 괜찮지 하면서
과감하게 죽다가 깜짝 놀라 깨어나 꿈이 아니면 어떡하지
드디어 꿈을 꾸면서
꿈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맘대로 할 수 있었다
어느날 그놈이 나타난 꿈을 꾸면서
21층 옥상에서 그놈 품으로 보란 듯이 웃으며 뛰어내렸다
아뿔사, 꿈속에서도 그놈은 내맘대로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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