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대파 모종을 심었다. 두 묶음을 심었다. 작년에 비해 묶음의 부피가 줄어든 것 같다. 헤아려 보았다. 한 단에 247개였다. 작년에 개수를 헤아려 보지 않았으니 비슷한지 줄었는지 모르겠다. 고랑이 길어서 한 고랑 심으니 한 단이 들어갔다.
파는 생명력이 좋다. 한 번 심으면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다. 겨울에도 살아 있다. 겨울에 움 속에서 자란 파를 움파라고 한다. 한자말로 동총(冬葱)이라 한다. 줄기를 베어내면 다시 올라온다. 파 몇 뿌리만으로 잘라먹고 키우고 할 수도 있다. 양파도 겨울에 물에 담궈 놓으면 줄기가 올라오는데, 자르면 또 올라온다. 양파를 먹다가 가을에 싹이 나면 밭에 심는다. 이듬해 봄에 대파처럼 먹을 수 있다. 둥근 한 개의 양파가 3~5개로 쪼개져 크는 게 신기하다. 파는 다년생이다. 쪽파도 안 캐고 놔두면 또 올라온다. 겨울을 이기고 봄에 통통하게 올라오는 쪽파는 더 맛있다.
먹을 수 있는 모든 채소가 그렇듯이 파도 약효가 있다. 파에 들어있는 유황 화합물들은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체내 콜레스테롤을 조절해 당뇨나 심혈관 질환 등의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단다. 동의보감에도 위(胃)가 아픈 것을 완화, 속을 따뜻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나온다. 눈ㆍ 장(腸)ㆍ 관절 건강에 좋고 해독과 지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릴 때는 파를 싫어했다. 떡국이나 국에 파가 있아면 파를 가려내곤 했다. 어른이 되니 파의 독특한 향이 좋고, 파가 들어가지 않으면 음식의 풍미가 덜 느껴진다.
파 모종을 심을 고랑을 만들기 위해 먼저 퇴비를 뿌렸다. 올해 처음으로 갈아엎는 땅이라 두 번 갈았다. 옛날에 소를 이용해 쟁기로 할 때는 갈아엎는다고 하는 게 맞다. 요즘은 관리기나 경운기 또는 트랙터로 하니까 땅을 갈아엎고 흙덩이를 잘게 부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밭을 갈 때마다 세상을 갈아엎는 개혁과 그 속성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먼저 갈아엎는 자의 의지와 도구의 튼튼함이나 힘을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에 땅의 상태를 봐야 한다. 말랐는가 축축한가, 진흙인가 모래땅인가. 그 다음에 갈아엎는 두께를 정해야 한다. 너무 얇으면 위 아래가 뒤섞이지 않아 갈아엎는 효과가 적다. 너무 깊이 갈아 엎으면, 힘에 부치거나 연장이 부서지기도 한다. 아니면 거름기가 전혀 없는 밑바닥의 생땅이 올라와버리기도 한다. 인간 사회의 크고 작은 공동체를 개혁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여름에 재배하는 파는 북을 줘야 한다. 북은 식물의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이다. 파가 크면 고랑에 있는 흙을 끌어올려 뿌리를 덮는다. 북을 한 번 줄 때마다 잎과 뿌리 사이에 있는 흰 부분이 길어진다. 이런 재배법을 연화법(軟化法)이라 한다. 햇볕을 가리거나 흙을 덮어 채소의 줄기와 뿌리를 희고 연하게 하는 방법이다. 대파는 이 흰 부분(연백부)이 길어야 상품(上品)이다.
기운이나 정신 따위를 더욱 높여 주는 ‘북돋우다’는 말이 ‘북’에서 왔다. ‘불현 듯’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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