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뛰어들어 앞장서는 일들이 있다. 그 일들은 대부분 내게 직접적인 이득이 없다. 일은 많고 구설수에 쉬이 오르고 때론 내 일상의 많은 시간을 잡아 먹는다. 가끔 스스로도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나 되묻게 되는데 남편이 한번씩 날리는 차가운 말들은 비수처럼 내리 꽂힌다. 올해까지 하던 일을 하고 명퇴를 하겠다고 몇 년전부터 공공연하게 말을 하고 다녔다. 올해는 명퇴 신청을 하겠다고 스스로 굳게 마음 먹고 있다. 명퇴이후의 경제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지금 앞장서는 일들이 의미있는 수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은퇴이후에는 이 일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그 일들을 왜 하는가? 당신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가? 남 좋은 일만 하다 나중에 원망하는 마음이 일지 않겠나?"
물론 남편이 위의 글처럼 차분하게 질문하지 않았다. 온갖 감정을 실어 말하는 남편에게 같이 한참을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났는데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다. 단지 남편의 말투때문만이 아니라 정말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뭘까? 현실적인 경제계획 없이 명퇴를 선언해 버린 나의 성급함이 문제일까, 공명심에 일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기 힘든 걸까, 내 이익은 챙기지 못하고 남 좋은 일에 앞장서 호구짓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생각들이 다 마음에 걸리지만 현타가 오는 지점은 당장 내년에 지금 하고 있는 일들과 경제적인 수입을 만드는 부분이 연결될 수는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개인적인 사업이 아니라 어떤 조직의 공익적인 성격이 짙어서 당장의 이득은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꾸준히 뭔가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내가 펼치고 싶은 일들을 해낸다면 벼락부자는 못되겠지만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놓칠 수가 없다.
이럴때 가장 유용한 고전이 곁에 있다. 주역이다. 질문하고 괘를 받아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보자!
질문: 명퇴 이후에 현재 하는 일들이 나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 줄까요?
득괘: 수뢰둔 (변효없음)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움이니 함부로 일을 진행해나가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彖曰 屯 剛柔始交而難生 動乎險中 大亨貞 雷雨之動滿盈 天造草昧 宜建侯而不寧
단에 이르기를 둔은 강건함과 유순함이 사귀기 시작하여 어렵게 나오고, 험한 가운데 움직이는 것이다. 크게 형통하고 바르다 함은 뇌우의 움직임이 가득 찼음이다. 하늘이 만들어 어두울 때는 마땅히 제후를 세우나 편안하지 않다.
象曰 雲雷 屯 君子以經綸
상에 이르기를 구름과 우레가 둔이니 군자는 이로써 천하를 다스린다.
初九 磐桓 利居貞 利建侯
象曰 雖磐桓 志行正也 以貴下賤 大得民也
초구 머뭇거림이니 바른데 거함이 이롭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상에 이르길 비록 머뭇거리나 뜻을 바르게 함이니 귀함으로써 천함에 낮추니 백성을 크게 얻는다.
六二 屯如 邅如 乘馬班如 匪寇婚媾 女子貞不字 十年乃字
象曰 六二之難 乘剛也 十年乃字 反常也
육이, 어렵고 걷기 어려우니 말에 올라 탔다가 내리니 도둑이 아니면 청혼하러 온다. 여자가 곧아서 시집가지 않다가 십년만에 시집간다.
상에 이르기를 육이의 어려움은 강한 것을 탓음이요, 십년만에 시집감은 상도에 돌아옴이다.
六三 卽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幾 不如舍 往吝
象曰 卽鹿无虞 以從禽也 君子舍之 往吝窮也
육삼, 몰이꾼 없이 사슴을 쫓으니 숲 속에 들어갈 뿐이다. 군자는 기세를 보아 그치는 것 같지 않으니 나아가면 인색하다.
상에 이르기를 몰이꾼 없이 사슴을 쫓는다 함은 짐승을 쫓음이다. 군자가 그것을 버린다 함은 나아가면 인색하고 궁함이다.
六四 乘馬班如 求婚媾 往吉 无不利
象曰 求而往 明也
육사, 말을 탔다가 내림과 같으니 청혼을 하러 나아가면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에 이르기를 구하고 나아가면 밝음이다.
九五 屯其膏 小貞吉 大貞凶
象曰 屯其膏 施未光也
구오, 그 기름짐이 어려우니 작게 바르면 길하고 크게 길하면 흉하다.
상에 이르길 그 기름짐이 어렵다 함은 베품이 빛나지 못함이다.
上六 乘馬班如 泣血漣如
象曰 泣血漣如 何可長也
상육, 말에 올랐다 내림과 같으니 피눈물이 흐름과 같다.
상에 이르길 피눈물이 흐름과 같다 함이니 어찌 가히 오래이리오?
수뢰둔괘가 나오는 순간! 직감이 왔다. 아니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하는 일들에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면 질문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쭉 적었듯이 경제적인 수익이 없는 일들인데 그 일들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냐고 질문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수뢰둔괘는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하는 때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움직이려는 형국이다. 위에 있는 물인 구름이 아래의 우뢰를 막아 힘차게 나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초창기의 어려움을 나타낸다. 딱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재를 찾아 제후를 세우고 올바름을 지켜 한땀 한땀 이어가도 모자랄 판에 사심을 잔뜩 드러내는 질문을 던지니 더 혼란함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육삼에서 몰이꾼 없이 사슴을 쫒다가 숲 깊이 들어가 버렸다. 군자는 기세를 보아 그칠 줄 알아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면 인색해진다는 말이 사사로운 욕심이 스스로를 곤란함에 빠뜨리고 있는 내 질문과 닿아 있다.
그래서 잘 질문해야 되나보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보니 나의 개인적인 일과 공적인 일이 뒤죽박죽 되어 혼돈의 상황이 드러난 것 같다. 나는 자주 그리고 쉬이 정념에 휩싸여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감정이 휘몰아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잠재우고 내 삶의 여러 장면들을 정돈해서 다시 제대로 된 질문으로 다듬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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