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을 필사하다가 색다르고 재미 있는 처방이라 인용하고 글을 쓴다.
“어떤 부인이 생각을 지나치게 하여 몸을 상하여 2년 동안 잠을 자지 못하였다. 장정종이 말하기를 “두 손의 맥이 모두 완(緩느린)한 것은 비(脾지라, 비장)가 사기(邪氣)를 받은 것으로, 비가 생각하는 것을 주관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남편과 의논하여 부인을 성내게 하기로 하여, [그 집] 돈을 많이 받고 며칠간 술만 많이 먹다가 한 장의 처방도 내어주지 않고 가버렸다. 부인이 크게 화를 내고 땀을 흘리다가 그날 밤 곤하게 잠들었다. 이와 같이 8,9일 동안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이후 밥을 잘 먹고 맥이 평맥(平脈평상시의 맥박)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담(膽쓸개)이 허해져서 비(脾)가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을 억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을 잠을 자지 못한 것인데, 이제 화를 내어 감정을 격하게 하여 담이 다시 비를 억제하게 되었으므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나름 처방이지만 약제 처방이 아니다. 생각이 맺혀서 잠을 자지 못하는 병에 대한 처방이다. 2년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생각’이라면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깨나 잊기 힘든 일이리라.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애가 타거나 끊어지는 사연일 수도 있고, 억장(億丈)이 무너지는 분함이거나 슬픔일 수도 있다. 감정을 격하게 분출하게 함으로써 치유하는 방법에 공감이 간다.
나는 집성촌인 시골에서 자랐다. 가문을 따지고 가부장적인 유교질서가 강했다. 감정 표현을 절제시키는 분위기였다. 아버지는 더 엄하셨다. 말소리가 크면 시끄럽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맞아도 울면 더 혼났다. 크게 웃어도 눈치를 줬다.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감정 표현에도 중용의 미덕을 실천해야 했다. 정서가 둔감해지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오욕(五慾) 칠정(七情)이라고 한다. 욕망을 절제해야 되는 이유는 뭘까. 넓게 말하면 공동체 사회의 화합을 위해서이리라. 욕망의 절제도 부와 권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다.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욕망은 그렇다 치고, 감정은 표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이라면. 화가 나는 일에는 화를 내고, 슬픈 일에는 슬퍼하고, 우스운 일에는 웃어야 좋은 것 아닐까.
감정 표현에 관한 것으로는 『열하일기』 ‘호곡장(好哭場)’이 압권이다. '호곡장'은 한바탕 울기 좋은 땅이다. “기쁨이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분노가 사무치면 울음이 나오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음이 나오고, 사랑이 사무쳐도 울음이 나오며, 미움이 사무쳐도 울음이 나오고……”
울음이 나오도록 사무치게 기뻐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미워해본 적이 있던가. 함부로 바랄 일은 아닌 듯하다. no pain no gain이라고 사무치는 기쁨을 얻으려면 사무치는 고통을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무치는 분노를 느끼려면 사무치는 억울함을 겪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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