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수영장에 갈 때는 비가 안 왔다. 밀운불우(密雲不雨)의 상태였다고나 할까. 밀운불우(密雲不雨). 빽빽한 구름이 끼여 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일의 징조(徵兆)만 있고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은덕(恩德)이 아래까지 고루 미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주역 풍천소축괘에 나오는 말이다.
수영을 다 하고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 비를 맞으며 걸었다. 큰 나무가 있으면 나무 밑으로 걸었다. 벌 두어 마리가 댕강나무 꽃잎 사이로 날았다. 비가 안 올 때 나왔다가 미처 못 들어갔는지, 비가 오는 걸 무릅쓰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비를 맞았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비를 맞는 일이 많았다. 우산이 귀하기도 했고, 갑자기 오는 소나기는 피하기 어려웠다. 비를 맞으면서 다른 동물들도 우산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들도 모두 우산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아무래도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우산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비닐을 만들고, 유리를 만든다.
식물을 스스로 우산을 쓰지 않지만, 인간은 식물에게도 우산을 씌운다. 비닐 집이나 유리 집을 만들어 식물들이 맞는 비의 양을 조절한다. 비의 양과 온도, 습도, 바람 등 자연적 조건을 스마트하게 인위적으로 조절한다.
인간은 누구나 신(神)이 되려고 한다. 농부는 비닐 하우스를 통해 식물들에게 신(神)이 되려고 한다. 목사는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신(神)이 되려고 한다. 스님은 절에서 중생들에게 신(神)이 되려고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한 가정에서 가능하면 신(神)이 되려고 한다. 학자는 그 연구 분야에서 신(神)이 되려고 한다. 대통령은 한 나라에서 신(神)이 되려고 한다. 인간은 지구에서 신(神)이 되려고 한다.
신(神)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데, 저절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신(神)을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존재라고 말한다. 신(神)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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