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소쩍새 소리를 듣다>
새벽 네 시에 잠이 깼다. 어젯밤에 일찍 잠든 탓일까. 소쩍 소쩍 분명히 2음절로 들린다. 솟소쩍도 아니고 소쩍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저녁 무렵에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새벽에 깰 리가 없으니 못 들었으리라.
농부들은 여름철에 새벽같이 나가서 아침 9시 정도까지 일하고 한참 더운 대낮엔 쉰다. 그러다 해가 빠질 4시 이후에 들에 나가 저녁 8시까지 일하곤 한다. 아침 일찍 농사일을 나가려다 보니 새벽 3~4시 쯤에는 잠을 깨곤 했으리라. 농사 짓는 농부가 소쩍새 소리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솥이 적게 느껴질 정도로 풍년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소쩍 새 울음이 ‘소쩍’으로 명확한 건 아니다. 어떤 솟소쩍, 어떤 때 소찌르르로 날 때도 있다. 그 소리에 따라 그 해에 풍년과 흉년을 재미삼아 점쳐봤으리라.
학교를 다니면서 문학 시간에 김소월의 시 접동새를 봤다. 소쩍은 접동으로도 들린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소쩍 소쩍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접동 접동 우는 것 같기도 하다. 또는 귀촉 귀촉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다.
김소월의 시 ‘접동새’ 일부.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접동새 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접동새 설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부인이 아들 아홉과 딸 하나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후처로 들어온 부인이 딸을 몹시 미워하여 늘 구박하였다. 처녀가 장성하여 시집갈 때가 되었으므로 많은 혼수를 장만하였는데, 갑자기 죽어버렸다. 아홉 오라버니가 슬퍼하면서 동생의 혼수를 마당에서 태우는데 계모가 주변을 돌면서 아까워하며 다 태우지 못하게 말렸다. 화가 난 오라버니들이 계모를 불 속에 넣고 태우니 까마귀가 되어 날아갔다. 처녀는 접동새가 되어 밤만 되면 오라버니들을 찾아와 울었다. 접동새가 밤에만 다니는 이유는 까마귀가 접동새를 보기만 하면 죽이므로 무서워서 그렇다고 한다.
접동새는 김소월의 문학 작품으로만 그 이름이 사전에 나온다.
서정주 시 ‘귀촉도’ 일부.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귀촉도는 두견과의 새로 나온다. 귀촉도와 두견새는 같은 새다. 귀촉(歸蜀)은 촉나라로 돌아가는 뜻이다. 불여귀(不如歸)와 의미가 같다. 자규(子規)도 귀촉도, 두견새, 불여귀와 같은 새다. 두견새는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의 넋이라고 한다. 위(魏)나라에 촉나라를 잃은 후 망제는 도망하여 복위(復位)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그 넉이 두견새가 되었고, 그리하여 두견새는 촉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품고 밤마다 이산 저산을 옮겨다니며 처절하게 운다고 한다.
새벽에 소쩍새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한스럽고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새벽에 잠 못 들고 있는 사람이 기쁜 경우보다는 슬픈 쪽이 많으리라.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상상하고 싶은 대로 했으리라. 서정주의 ‘귀촉도’는 아무래도 중국 정서이고 배운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김소월의 ‘접동새’는 우리 정서에 맞는데, 소쩍새인지 두견새인지 모르겠다. 소쩍새 소리와 두견새 소리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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