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다 문득 ‘일 스트레스 안 받으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을 안 했다면 지금쯤 학교에서 정신없이 바쁠 때가 아니던가. 편안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낮 설었지만, 안정감도 들었다. 물론 2년 전에도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으로 휴직을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유치원도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내내 전쟁을 치르듯 지내다 보니 하루도 맘 편안할 날이 없었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여겨질 만큼. 그런 이유로 살림 밑천 노릇을 하려고 여상으로 진학했다. 3학년 초, 한 보험회사에 합격해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벌써 약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보험에 대한 인식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내근직 사원으로 보험설계사와 내담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보험설계사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보험 아줌마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딸 같다며 예뻐해 주는 듯했지만, 돈 문제가 얽히자 안면을 확 바꾸는 모습을 보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고객들의 클레임도 비일비재했다. 영업이 우선인 회사 분위기도 맞지 않았고, 선배들이 하는 일을 보며 비전이 없다고 느꼈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는데, 부모님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진로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사서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기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꿈을 위해 2년 4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립초등학교 행정실에 취직하게 됐다. 면접 때 학교 도서관과 행정실 업무를 같이 할 거라고 했지만, 막상 출근하니 행정업무만을 담당했다.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사서가 되고 싶었는데, 하는 업무가 첫 직장과 비슷했다. 그 와중에 실장님의 텃새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마침 단짝 친구가 이직 제안을 해 왔고,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음에도 학교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후임으로는 같은 과 동기가 들어왔다. 친구 따라간 곳이 다단계 회사임을 알고는 눈앞이 캄캄했다. 마침 과 동기가 울며불며 도저히 일 못 하겠다 하고, 학교에서는 다시 돌아와 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속으로는 다행이라며 안도했지만, 한 번 생각해보겠다며 확답을 미루었다. 결국 그렇게 돌아간 두 번째 직장에서 실장님은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나를 대했다. 덕분에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그곳에서 8년간 근무하며 저녁에는 배움의 끈을 이어갔다. 그 무렵 학교도서관 발전 종합 계획이 수립·실시되면서 사서교사 임용 정원이 대폭 확대되었다. 바로 ‘저거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초등학교 시절 꿈이 선생님이었고, 20대 초반에는 사서를 꿈꾸었는데, 그것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때부터 내 꿈은 사서교사였다. 교직이수를 위해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졸업 무렵 논문과 임용시험을 함께 준비했고, 마침내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을 확인하던 순간, 그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감격스러웠다. 걱정 많았던 부모님은 한동안 입이 귀에 걸려 계셨다.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으니 부모님도 절로 행복해진다는 걸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꿈을 이뤘다는 설렘으로 시작한 사서교사의 길도 녹록치 않았다. 2007년 첫 발령 당시 울산의 전체 사서교사 수는 신규 9명을 포함해서 모두 12명이었다. 창고처럼 방치되어 있던 학교도서관을 활성화 시켜야 했고, 후배들을 위해 사서교사의 존재감도 각인을 시켜야 했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고군분투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2012년 겨울 늦은 결혼을 했고, 다음 해에 첫째, 두 해 뒤에 둘째를 낳았다.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 되던 무렵 3년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다. 오랜만의 복직이라 걱정됐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 해에 굵직한 사업들이 수립되어 일이 많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업도 많아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봐주셨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다가 깼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는 날에는 잠 한숨 못 자고 출근하는 날이 잦았다. 그래도 직장에서는 티 내지 않고 맡은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연말쯤 감기몸살과 장염으로 한 달 정도 아팠었다. 건강한 체질이라 자부했었는데, 몸에 무리가 오고 말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때부터 슬럼프가 시작되었던 듯하다. 엄마로서의 나, 사서교사로서의 나,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의 나, 이 셋의 밸런스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이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러나 실천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방황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학교를 옮겼고, 그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해보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관리자의 괴롭힘이 있었다. 그 속에서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그만두고 싶었다. 다음 해에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으로 휴직을 예정하고 있던 터라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렸던 휴직이었건만 코로나 19로 인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 가버렸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돌아오니 관리자가 바뀌어 있었다. 덕분에 맘 편히 일할 수 있었다. 의욕을 찾아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던 중 또 다른 악재가 찾아왔다. 인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면 뭐해, 이렇게 자꾸 뒤통수를 치는데……. 허망하고 모든 것이 다 귀찮았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둘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다시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탈대로 다 타버린 느낌이었다. 번 아웃 상태가 온 것이다. 그렇게 멍하니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다 지인이 운영하는 북카페 밴드에 주역 수업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주역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그 지형과 변화 양상을 통찰하며 내 삶을 재구성한다’는 안내 문구에 마음이 가 신청을 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나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은 나의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돌고 돌아 나의 시간은 다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올 나의 시간을 위해 쉬거나 공부하면서 준비하면 된다. 그 이야기가 내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 그래서였구나. 나의 시간이 아닌데, 자꾸만 뭐를 해보려고 하니 꼬이고 어렵기만 했구나. 이해되었다. 나의 상황이. 그리고 나의 시간은 다시 돌아온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주역의 괘 중 ‘풍지관’이라고 있다. 풍지관 괘는 땅 위에 바람이 불고 있는 상태를 상징한다. 또한, 풍지관의 ‘관’은 거울, 미러링, 관찰, 성찰 등의 뜻이 있다고 한다. 그 괘를 보면서 문득 지금 내 상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열심히 뛰고, 걷다가 잠깐 멈춰 서 있는 나. 그런 내 속에서는 바람이 분다. 거칠게 휘몰아쳐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정도의 바람은 아니고, 뭔가를 자꾸 일렁거려서 살펴보게 만드는 바람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는 몇 년이 되었지만 멈추지를 못했다. 멈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뭔가 자꾸 꼬이고 뜻대로 되지 않고 버거웠다. 그러다 소진될 대로 소진되어 결국에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는 바람이 힘들게 해서 버겁다고 생각했다. 멈추어 있는 지금 그 바람은 나를 살펴보게 하고, 지켜보게 하고, 알고 싶게 만든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등 말이다. 지금의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다 보면 내 본래의 모습들이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열아홉 살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30년 만에 찾아온 휴식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귀하다. 이제 내년이면 오십을 맞이하게 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아마도 그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그동안의 삶이 목표와 성취를 위해 달려온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천천히 노닐 듯 쉬엄쉬엄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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