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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서 평등과 평화를....

by 두마리 4 2025. 1. 16.

시집 한 권을 읽었다. 첫 번째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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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똥차가 연다/ 오양옥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

새빨간 거짓이 된 지 오래다

 

콩나물국밥도

핏물 고인 스테이크도

간밤의 행적 깡그리 지워버린 채

이곳에선 그저 똥이다

 

부글부글 터지는 세상

미주알고주알 쏟아낸 푸닥거리 갈앉혀

별 다름없는 무심함으로

나의 아침을 두드린다

 

품고 있거나 뱉어내거나

그놈이 그놈인데

구린 눈엔 구리게만 보일 테지

 

귀하지 않은 중생 어디 있을까

오늘도 초록의 똥차는

똥같은 세상 똥으로 뭉개며

후련한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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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위에 풀 없고, 고양이 밑에 고양이 없지만, 사람 위에는 사람 있고 사람 밑에도 사람 있다. 하물며 사람이 싸질러 놓은 똥에게 계급이 있다고 말한다. 아래 깔린 똥과 위에 걸터앉은 똥은 신분이 다르다. 요즘은 밑똥 위똥 구분 없이 물로 싹 씻어내리니 똥에는 계급이 없어졌나.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똥같은 사람에게는 계급이 없어졌나. 푸세식 뒷간의 똥은 배설한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여서 계층이 이루어졌었다. 과거에는 똥같은 사람들끼리도 신분이 나눠졌었는가.

 

서민이 먹은 콩나물밥이 소화되고 변한 똥이나 부자가 먹은 스테이크가 변하여 된 똥이나 거의 다름 없이 평등하다. 음식은 신분에 따라 차등이 있지만, 그 똥은 평등을 이룬다. 배설의 평등이다. 세상의 모든 찌꺼기, 쓰레기가 되고 썩으면 차등이 없어지고 평화를 이룬다.

 

백만원 짜리 음식이나 천 원짜리 음식이나 똥이 되면 차이가 없다. 백만원 짜리 음식이 백만원 짜리 똥으로 남으면 그것이말로 큰 일이다. 먹어서 똥이 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먹는 모든 것은 똑같은 똥이 된다는 것은 위대한 평화다.

 

소고기, 돼지고기, 쌀밥, 생선이나 온갖 값비싼 요리들이 똥이 되는 순간 고급과 위세의 옷을 벗고 적나라하게 평등한 똥으로 변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실체가 없다는 진리를 똥은 증명한다. 분해된 똥들은 다시 나무나 풀이나 고양이나 소나 돼지나 돌로 변한다. 이것은 저것으로 저것은 또다른 무엇으로 사계절에 따라 또는 몇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에 따라 무엇인가가 되고 또 끊임없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변해간다.

 

탁닛한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내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테이크는 스테이크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똥은 똥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은 세상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양옥 시인의 시집 목적어와 외딴섬에서 딱 한 편만 고르라면 허락된 가출을 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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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된 가출

 

“잘 도착했어요”

남편의 메시지에 시선을 꽂습니다

 

친구가 바람 잡아 떠난 남자들만의 여행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던 그에게

가라고 꼭 가라고 등을 떠밀었지요

 

목적 없이 가족 없이 떠나는 여행이 낯설어

여행 전부터 눈짓도 몸짓도 어색했던 그에게

“여긴 신경 딱 끄고”

짧은 답신을 보냅니다

 

아들로 남편으로 아빠로 살면서

어떤 고비에도 무릎 굽히지 않았던 사람

허락된 그의 가출이 우리가 응원하는 쉼표였으면

 

딩동~

하늘 넘어 사진 몇 장이 날아옵니다

웃음기 없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납니다

“좀 웃고 찍지”

“마누라가 없어서”

무딘 내 심장이 파르르 물결쳐옵니다

 

이제 내 남편,

허락된 가출을 끝내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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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놔두고 친구들끼리만 떠나는 남편의 미안함이 잘 드러나 있다.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부담감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즐기고 오라는 아내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일상적인 소재로 남편의 심리와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의 마음이 쉽고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웃음이 난다는 표현과 좀 웃고 찍으라는 아내의 메시지에 마누라가 없어서라며 속이 뻔히 보이는 남편의 반응이 싱겁고 덤덤해서 아름답다.

-목적어와 외딴섬(오양옥)을 읽고

 

(공백 포함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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