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지관(風地觀). 땅 위에 바람이 부는 상인데 괘명이 관(觀) 이다. 괘명으로 보아 바람이 대지 위를 이리 저리 자유로이 부는 국면만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엔 그냥 가볍게 생각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높이 나는 새처럼 땅 위의 상황을 두루두루 살필 수 있다.』 정도로. 하지만, 관괘(觀卦)에 대한 선생님의 수업이 진행될수록, 뭐지? 뭐지? 내 생각에 무언가가 제대로 빠진듯하다.
커피를 마시거나 집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틈틈이 수업내용과 『주역은 천도로 인간의 도를 연역하고... 』(참고1) 의 내용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바람(손-巽)이란 무엇인가? 바람은 하늘과 땅 사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현상 정도일 텐데 ... 좀 더 고민하다, 『건(乾)과 곤(坤)을 연결하고 있는 무엇』으로 가정해 본다.
이를 바탕으로 풍지관(風地觀) 괘를 다시 들여다보니, 하늘의 도를 따라 땅의 도로 태어나 자라고, 지풍승(地風升)의 국면을 거쳐 하늘 가까이 높이 날아올라, 하늘의 도를 따라 살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하는 국면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관괘(觀卦)를 만난 김에 생각해 보니, 지금 나에게 하늘의 도는 『ㅇㅇ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답게, 남편답게, 부모답게, 자식답게, 주역을 공부하는 학생답게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고 ^^;; ... , 그리고, 『계속 묻고 답해 나아갈 나답게 사는 것』. 그렇게 살아가다, 풍지관(風地觀)의 국면을 맞이하여 다시 하늘 가까이 날아올라 하늘의 도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고 ... 그때 내가 염두에 두고 있을 하늘의 도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제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붕(鵬)새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수업 중,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 한 분(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실명은 거론하지 않습니다.~~)이 “붕(鵬)새는 왜 남쪽으로 날아갔을까요?”라고 질문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냥 그게 궁금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넘겼으나, 풍지관(風地觀) 괘(卦)를 요렇게 흘끔거리고 나니, 그 질문이 예사 질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며, 요즘 흘끔거리고 있는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남쪽의 하늘(乾)의 도를 따라 북쪽의 땅(坤)의 도로 태어나 자라난 물고기 곤(鯤)이, 붕(鵬)새로 변태(變態)하여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남쪽으로 날아가, 하늘의 도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장면을 그려본다. 곤(鯤)이 붕(鵬)새로 변태(變態)하는 장자의 묘사는 살면서 변해가는 마음이나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소소한 깨달음, 알아차림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자신이 붕(鵬)새가 아니어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이런 붕~새』라고 뒷담화 해줄 것 같은 매미나 작은 비둘기의 이야기는 『비교와 분별』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장자가 던진 숙제는 아닐지?
[요즘 나의 흘끔거림]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는 이(離)가 배치된 동쪽에서 해가 떠, 건(乾)이 배치된 남쪽에서 가장 높이 솟아올랐다, 감(坎)이 배치된 서쪽으로 지고, 곤(坤)이 배치된 북쪽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의 순환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참고 1)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 (진고응 | 예문서원 | 1996년 07월 31일) 본문 중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 “주역은 천도의 원리를 추론해서 인간사를 이해했다.”고 적고 있다. 진고응의 책 내용 중 “천도로 인간의 도를 연역하고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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