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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by 두마리 4 2023. 8. 25.

요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자, 허유는 받지 않고 그런 말을 들은 것을 부끄러워하며 달아나 숨어버렸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는 아우인 숙제에게 뒤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왕위를 백이에게 양보하려 하자 백이는 달아나버렸다. 숙제도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그 중간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주 무왕이 은 주왕(紂王)을 치려하자 백이와 숙제는 아버지 장례도 치러지 않고 전쟁을 치르는 것은 효()가 아니고, 신하로서 군주를 치는 것은 인()이 아니라며 말렸다. 무왕의 신하가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하자, 태공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살려주었다. 주 무왕이 은나라를 평정하자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죽었다.

 

공자는 제자 중에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노나라 제후에게 추천하였으나, 안연은 가난했고 배불리 먹지 못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도척(盜跖)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고기를 잘게 썰어 육포로 먹었다. 잔인한 짓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 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허유나 숙제의 인품과 능력이 군주가 볼 때도 가장 낫고, 백성들이 모두 인정한다면 이들의 거절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보다 못한 사람이 나라를 맡아 백성들 도탄에 빠뜨려도 이들은 의로움으로 칭송받아야 할까. 은나라 주왕(紂王)의 폭정(暴政)으로 많은 백성들이 괴로움을 겪어도 신하가 군주를 치면 안된다는 인()을 지키는 것이 옳을까.

 

신하로서 군주를 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말한다면 쿠데타나 탄핵과 유사하다. 쿠데타나 탄핵이 쉽게 이루져서는 안 된다. 자칫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내전에 빠질 수 있다. 또는 현재 군주가 저지르는 잘못보다 더 큰 내홍(內訌)과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밀운불우(密雲不雨)와 같지 않을까.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명분이 쌓여도, 비가 내릴 때까지 조금 더 축적해야 하지 않을까.

 

백이와 숙제, 안연은 어쨌든 착하다. 그런데 착하게 살아서 일찍 죽은 것이다. 규범을 따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을 일삼으면서 한평생 편안하게 살고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말을 할 때나 행동을 할 때 알맞게 가려서 하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이 많다.

 

선악(善惡)에 따른 결과가 현생에 다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세를 믿는 이유가 아닐까. 착한 일을 하면 죽어서 천국 간다고 말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생의 삶에 따라서 윤회한다고 하는 게 아닐까.

 

줄을 서는데 모두가 새치기를 할 수는 없다. 새치기는 대부분이 줄을 서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이 선()하지 않은 행위로 한 평생 잘 사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소수의 선하지 않는 사람이 잘 살고 천수(天壽)를 누리는 게 역겹고 배아플지라도 그것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같이 규범과 법령을 어기고 악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지>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먹고 살다가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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