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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산수몽괘를 보다가 『데미안』의 ‘알 깨기’가 생각났다.
산수몽괘의 괘사는 이렇다.
“어리석음은 형통할 수 있으니, 내가 어리석은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어린아이가 나를 찾는 것이다. 처음 묻거든 알려주고, 두 번 세 번 물으면 모독하는 것이다. 모독하면 알려주지 않으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묻지 않는 아이도 가르쳐야 할까?
배우고 깨우치는 데는 자발성이 중요하다. 배우는 대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물음으로 나타난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다. 동료에게 묻고 스승에게 물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답을 구한다. 물음을 통해 배움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드러난다. 묻지 않는 아이는 가르쳐봐야 별 소용이 없다. ‘이것’에 관심이 없으며 ‘저것’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는 대상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것이 아닐까.
공자도 자발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어떤 이치를 거의 깨달을 듯하나 아직은 확실히 깨닫지 못한 상태가 아니면 깨우쳐 주지 않으며, 어떤 말을 거의 할 수 있을 듯하나 아직은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이면 틔워주지 않는다” “네모난 사물에서 한 모퉁이를 들어 설명해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모퉁이를 유추해 내지 못하면 나는 그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효사에 나오는 발몽(發蒙), 포몽(包夢), 곤몽(困夢), 동몽(童蒙), 격몽(擊蒙)은 모두 깨우침의 방법인가?
발몽(發蒙)의 사전적 의미는 가르쳐서 깨우침이다. 계몽(啓蒙)과 같다. 발몽에 이어지는 초효사는 ‘사람에게 형벌을 쓴 후 질곡을 벗기는 방법이 이로움’이다. 발몽에는 덮개를 젖혀서 연다는 뜻도 있다. 발몽은 씨앗이 땅속에서 덮고 있는 흙덩이를 뚫고 올라오는 것이다.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발(發)’은 ‘핌’이고 ‘밝힘’이다. 피기 위해서는 먼저 오므려야 하고,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어두워야 한다. ‘몽(蒙)’은 피기 위한 오므림이고 밝아지기 위한 어둠이다. ‘몽(蒙)’은 ‘알’이다. 『데미안』의 문구가 떠오른다. “새는 몸부림치며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몽(蒙)’은 ‘알’처럼 어둠의 세계에서 껍질을 깨고 반드시 밝은 세계로 나아간다. 그래서 형통하다.
발몽(發蒙)에는 깨우침의 방법이 있다. ‘형벌’과 ‘질곡(桎梏)’이다. 이것은 씨앗을 덮고 있는 흙덩이고, 알을 감싸고 있는 껍질과 같다. 생명을 보호하는 막이면서 동시에 생명이 뚫고 나와야 하는 벽이다. 세 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 작은 잘못을 징벌하여 큰 잘못에 이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의 어릴 때 작은 잘못에 자비로우면, 오히려 그 자식을 죽이는 꼴이 된다.
포몽(包夢)에는 포용과 관용으로써 깨우치는 방법이 있다. 때로는 무지몽매함을 관대하게 감싸줌으로써 깨우침을 유도할 수 있다. 미숙함을 감싸는 ‘포(包)’와 받아들여주는 ‘납(納)’과 스스로 다스리고 이겨내보도록 하는 ‘극(克)’의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쓰려면 깨우침을 주도하는 부모나 스승이 그럴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곤몽(困夢)은 몽매함으로 곤란해하면서도 배우지 않는 자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타고난 자질이 노둔하여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배우지 않는다면 사람 가운데 이런 이가 가장 하류이다”
동몽(童蒙)은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버리고 이치에 순종하며 겸손한 사람이다. 맹자가 말한 ‘대인(大人)’이다. “대인이란 갓난아기의 천진무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이다” 배움을 좋아하는 군자의 상징이다.
육효사는 격몽(擊蒙)의 유의점을 말해준다. 엄한 가르침이 훌륭한 제자를 길러 내기도 한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그 의욕이 과해서 포악하고 과격해져서 폭도나 깡패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나 선생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려는 의욕이 넘쳐서 아이에게 도적처럼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가 도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르치는 사람이 스스로 도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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