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도 '고방'이라 했다
장독으로 안 쓰는 독에는 한 가득 홍시가 들어있어 겨우내 수시로 갖다 먹었다. 스케이트를 타거나 물고기를 잡는다고 추위에 한나절 떨다가 들어와 따뜻한 아랫목에 뜨근하게 데운 시루떡을 차가운 홍시에 찍어 먹던 맛을 잊을 수 없다.
외갓집 고방에서는 갈 때마다 늦가을 따서 재놓았다 밥그릇에 퍼주시던 고욤 맛이 외할머니의 곰방대와 웃음처럼 정겹고 푸근했다.
우리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술은 광약(狂藥)이라 말씀하시면서 안 마셨기 때문에 음식 솜씨 욕심 많은 어머니도 술 담는 실력은 없으셨다. 딱 한 번 동네 술 잘 담는 아지매한테 배워서 술을 담았는데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복숭아, 머루 등을 넣고 소주를 부어 만든 과실주는 항아리들은 몇 개 있었다. 술 먹는 사람이 없어 읍내에서 고등학교 다니면서 자취하는 둘째한테 담금 주를 한 병씩 갖다 주시곤 했다. 공부에 지친 아들이 한 번씩 한 잔씩 하기를 바라셨는지 아직도 궁금하면서 한편으로 고맙다.
잘 익은 개복숭아를 담아 만든 노란 빛의 과실주도 혀에 감기는 감칠 맛이 있었다.
고방에서 먹은 최고의 맛은 천연 머루진액이었다. 어느 늦가을 아버지께서 아주 푹 익은 머루를 한 푸대 따오셨다. 항아리에다 그 머루 송이들만 재놓았는데, 워낙 잘 익어 끈적할 정도로 진액이 되면서 약간 발효가 되어 술이기도 했다. 맛있는 보약 같은 천연 머루주였다.
(공백 포함 70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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